유독 축구에는 ‘원정(16강)’, (태극)‘전사’, ‘(조광래)사단’, ‘(도쿄)대첩’등 군사 용어가 많다. 이를 두고 혹자는 일명 ‘전투 축구’로 대변되는 군대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특히 일제 식민지 통치의 기억이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일본과의 축구경기는 전투와 다름 없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경제대국이기에 앞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대일 뿐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2010년 한해를 돌아봐도 일본전은 한국인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2010 올해의 베스트’에 따르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8경기 중에서 3경기가 일본전이다. 9월 26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3골씩 주고받는 혈전을 벌이고 승부차기에서 승리해 사상 첫 FIFA 주관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일, 5월 24일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박지성과 박주영의 연속골로 일본을 완파한 일, 10월 11일 중국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 8강전에서 0대2로 끌려가다 3대2로 역전승을 거둔 일이 그것이다.
‘2010년의 가장 멋진 골’에는 5월 친선평가전에서 박지성(29, 맨체스터)의 강력한 오른발 슛이 1위를 기록했고, 9월 26일 U-17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일본에게 2-3으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후반 교체투입된 이소담 선수가 1분 만에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바깥에서 강력한 오른발 발리 슛으로 넣은 골이 설문조사에서 수위에 들었다.
한일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선수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전 박지성은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은 한일전에서 질 경우 바다에 빠지라는 말을 듣는다”며 한일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표현한 바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선수들이 한일전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며 “전통의 라이벌인 만큼 코칭스태프 뿐만 아니라 선수들 각자가 한일전에 임하는 결의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임전무퇴’의 정신은 전적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한일전 상대전적을 보면, 국가대표팀의 경우 1954년 3월 스위스 월드컵 예선 1차전에서 5대1로 승리한 이후 73전 40승 21무 12패를 기록하고 있다. 올림픽대표팀간에는 12전 4승 4무 4패로 박빙이지만, 청소년(U-19, U-20) 대표팀간 전적에서도 38전 26승 7무 5패로 우위를 점해 왔다.
한국인들에게 한일전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대화 이전에 모든 문화는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갔다. 이는 정신적으로 일본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한국인들에게 심어줬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근대화 이후 일본이 급성장하면서 민주화나 국민소득 면에서 주변 국가들을 앞서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집단적 차원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문화정서적 경향’이 굳어줬다”고 설명했다.
<이태형기자 @vmfhapxpdn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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