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유사와 일전(一戰)을 선언했다. 윤 장관은 경제난 속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본 정유사를 향해 “가격 인하 요인이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말의 성찬’일 뿐이다. 정부와 정유사간 책임 떠넘기기식 논리 싸움에 소비자는 여전히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다. 체감할만한 대책이 나온건 아니다. 나올것 같지도 않다.이런 상황을 비웃기나 하듯 10일 석유제품 값은 또 올랐다.
▶‘오늘도 휘발유 값은 오른다’=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오피넷)에서 집계한 보통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ℓ당 0.23원 오른 1844.68원을 기록했다. 1900원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서울지역에서 휘발유를 1ℓ에 2000원 넘게 파는 주유소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정부는 국내 정유사의 막대한 수익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SK에너지)의 작년 매출액은 43조8700억원으로 작년보다 22.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조7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88.0% 급증했다. GS칼텍스 역시 지난해 35조3000억원 매출에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정유사는 수출로 이익을 봤다고 항변하지만, 국내 판매로 손해를 봤다는 얘기기는 없다.
정부로부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지난달부터 정유사는 주유소에 공급하는 보통 휘발유 값을 1ℓ당 10원 정도 찔금 내리긴 했다. 하지만 소비자나 정부 눈에 덜 띄는 등유 공급가격은 계속 올렸다. 올 1월 4째주 실내등유, 보일러등유 세전 공급가는 바로 전주보다 ℓ당 20원 안팎 상승한 894.57원, 895.77원을 각각 기록했다.
현재 범정부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팀이 가동되고 있지만 눈에 띌만한 성과를 낼 지 장담하기 어렵다. 지경부 관계자는 “정유사의 내부 자료까지 샅샅히 뒤지지 않는 한 가격 구조의 문제점을 세밀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한계를 설명했다. 현재 국내 석유제품 값은 등락폭이 큰 싱가폴 현물가격과 연동해 책정된다. 수입원가에 맞춰 국내가가 결정되지 않는다. 국내 유가가 ‘오를때는 로켓이고 내릴때는 깃털’인 이유다. 하지만 지경부 당국자조차 “사실상 대안이 없다”고 답한다.
▶정부와 정유사 논리싸움만 반복=물론 정유사를 압박하는 정부도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름값 상승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면서도 재정부는 유류세 인하에 대해 유보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정부는 휘발유, 경유에 붙는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로 12조33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거뒀다. 교육세 세수도 막대하다. 휘발유에서 8076억원, 경유에서 1조419억원에 달하는 교육세를 징수했다. 주행세 등 다른 세금을 감안하면 정부가 석유제품을 통해 거둬들이고 있는 수입 역시 막대하다.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수입은 정부가 유류세를 반짝 인하했던 2008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 유류세수는 유가 상승에 힘입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쪽 다 말꼬리 잡기식 논쟁만 반복하는 사이 소비자만 고스란히 그 부담을 다 지고 있는 셈이다.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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