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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콘 박영진 "'소는 누가 키우나'...원래는?"
남자는 하늘이라고 주장하는 ‘두분토론’의 남하당 대표 박영진이 ‘개그콘서트’ 5년 만에 월척을 낚았다. ‘두분토론’은 박영진을 통해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전근대적인 남성 우월주의를 희화화하는 개그로 큰 반응을 얻고 있다. 박영진은 “요즘 인기를 실감한다”면서 “하지만 떡밥, 좌대, 고기 모두 준비된 상태에서 들어온 것 같아 쑥스럽다”고 겸손을 보였다.

박영진은 이전에도 ‘박대박’ ‘춘배야’ ‘뿌레땅뿌르국’ ‘봉숭아학당’에서 중박 정도는 친 적이 있었지만 대박급 히트는 처음이다. 그는 강성 비호감 캐릭터라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캐릭터가 소통이 안되고 우기고, 뻔뻔한 똥고집 남자다. 과연 시청자들이 좋아해줄지 의문이었다. ‘소는 누가 키울 거야’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지도 몰랐다.”

애초에 박영진이 의도한 구도는 억지스러운 말을 강하게 던져 야유를 받으면 여당당의 김영희가 이를 풀어나가면서 환호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김영희를 받쳐주는 역할이었다. 여당당 대표 김영희는 여성의 입장과 관점에서 “대단한 투사 나셨다 그죠?”하면서 남자(박영진)를 공격해 시청자에게 후련함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박영진도 김영희 못지않은, 어떨 때는 김영희보다 더 강한 환호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두분토론은 ‘소는 누가 키울 거야’라는 대사가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토론 내용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재미있어도 보고나면 생각이 잘 안 난다. 그런데 ‘소는 누가 키울 거야’라는 말은 그 내용을 바로 환기시켜 준다. ‘소는 누가 키울 거야’는 ‘집안일은 누가 할 거야’라는 뜻인데, 그대로 하면 일반적이고 또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지닌 옛날 사람 느낌을 줘야 하니까 ‘밭은 누가 갈 거야’ ‘감자는 누가 캘 거야’라고 아이디어를 냈다가 ‘소’로 결정된 거다.”


‘두분토론’에서 박영진의 우기기 말투가 기대 이상으로 잘 먹히는 건 현재 남자의 낮아진 위상과 관련이 있다. 남자가 오히려 약자가 된 세태라서 호응도가 더 높다. 만약 남자가 강자였다면 박영진은 밉상 캐릭터에 그쳤을 것이다.

“‘소는 누가 키워’라는 말에는 남성이 약해져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남성이 허세를 부리면서 말하지만 권위는 추락하고 초라해진 지 오래다.” 그래서 ‘소는 누가 키워’가 유행어로 자리잡으면서 ‘그런 소가 ~소야’라는 억지 말이 추가로 이어질 수 있게 됐다. 박영진의 두분토론은 ‘~하는 남자의 자존심을 매도하지마’에서 허세의 정점을 찍는다.


“남성들은 힘을 잃고 위축돼 있다. 하지만 남자는 책임감이 강하다. 그래서 직장 구하고, 장가도 가야 하고, 걱정과 스트레스가 많다. 나도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 기분을 안다. 고개 숙인 남자보다는 고개를 들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개그로 승화시키고 싶다.”

박영진은 ‘박대박’ 이후 제법 긴 슬럼프를 체험했다.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코너 아이디어도 ‘토론식으로 하자’는 건 진행자로 나오는 김기열이 냈다. 그후 몇 차례 회의를 거쳐 ‘남녀 토론’으로 정착됐다. 박영진은 토론 상대자인 김영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영희는 신인이고 나와 코너를 같이할지도 몰랐다. 막상 함께 해보니 당당하고 뻔뻔하게 잘하더라. 욕심이 많고 고집도 세 우려도 했지만 이 코너를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본이 나오고 나서도 거기서 더 재미있게 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정도다. 처음엔 김영희에게 기대려고도 했다.”

박영진은 원래 웃음 모티브를 우리 언어의 특수성에서 찾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언어인데 사실은 말이 안되는 것, 그런데도 잘 알아듣는 말이 우선 웃음 소재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서 시원하다고 하고, 문을 닫으면 나갈 수 없는데도 “문닫고 나가”라고 한다. 이런 점을 활용한 ‘말장난 개그’가 ‘궤변개그’ ‘우기는 개그’로 발전했다. 그의 궤변보다 말이 안 되는 현실이 코너의 인기 비결이었다.

하지만 그는 캐릭터가 있고, 유행어가 있으며, 연기 호흡의 힘을 발휘하는 개그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박영진은 “나는 표정도 개그맨 같지 않고 음성도 저음이라 힘들었다”면서 “아직 개그의 내공을 더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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