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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들의 이별공식엔‘장르’가 없다
결혼 5년차 이 부부

오늘 헤어진댄다

그런데 조금 허전하다

그 흔해빠진 눈물도

원망도 없이 그저

저녁이나 한 끼 하잔다



두 남녀가 이별한다. 여자는 결별을 선언하고, 남자는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오늘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라고 묻고, “아니, 됐어. 난 괜찮아”라고 대답하듯, 이들의 헤어짐엔 표정이 없다. 아니, ‘장르’가 없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수수께끼가 있어 속 시원히 비밀을 밝히는 스릴러도 아니고, 치정과 불륜의 격렬한 정사(情事)도 없으며, 눈물 짜내는 애절한 신파도 거절한다. 이들 남녀에게 이별의 풍경이란 그저 일상의 한 조각을 뚝 떼어낸 단면 같다. 한 줌의 특별함이란 매일 매끼 먹던 식사를 한 번 거르는 정도랄까. 그러나 그 마음까지 그럴까. 관객은 그저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그’(현빈)와 ‘그녀’(임수정)의 이야기다.

제6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여자, 정혜’의 이윤기 감독이라는 브랜드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초청했겠지만,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제3의 현빈’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까다로운 재벌 2세와 영화 ‘만추’에서의 가볍게 허세가 섞인 쾌남에 이어, 현빈은 이 작품에서 전작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차이는 ‘시크릿 가든’에서의 말쑥한 헤어스타일과 ‘한땀 한땀’ 직조했다던 명품 트레이닝복 혹은 정장, ‘만추’에서의 부풀려 뒤로 넘긴 머릿결과 약간의 능청 섞인 발랄함만큼이나 크다. 이 영화에서 현빈은 편안한 니트셔츠에 면바지 차림으로 살짝 웨이브를 넣은 장발을 자꾸 쓸어올린다. 도통 흥분하는 법이 없고, 억양을 높이는 경우도 없이 느릿한 말투로 정적과 정적 사이에 조심스럽게 말을 끼워넣는다. 


이 남자는 5년간 같이 살아온 아내의 결별 선언을 그렇게 받아들인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남자가 생겼다며 집을 떠나겠다고 한다. 며칠 후 집안. 짐을 싸고 있는 것은 남자다. 굳이 따지자면 이혼의 ‘귀책사유’는 아내한테 있겠지만, 정작 깨질세라 조심스러운 것은 남자다. 남자는 떠날 여자를 위해 여자의 물건들을 정성스럽게도 포장한다. 지나온 5년간의 어느 하루를 지내듯 아무렇지도 않은 남자의 반응에 오히려 답답하고 화가 난 여자가 투정을 해보지만, 남자는 여전히 “미안해, 괜찮아”라고 할 뿐이다.

비 오는 어느 오후. 이별을 앞둔 결혼 5년차 부부의 3시간여를 담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마치 멈춰 선 시간을 베어내 펼쳐놓은 것 같은 작품이다. 에피소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마지막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을 예약하지만 비가 와 갈 수 없게 된다. 길 잃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집안으로 들어오고, 그를 찾아 이웃의 수다스러운 중년부부가 문을 두드린다.

지나치리 만큼 감정과 움직임이 절제된 이 영화는 두 층으로 나뉜 두 부부의 공간과, 그들의 추억이 깃든 사물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통해 이별을 마주한 두 남녀의 내면을 응시한다. 하지만 ‘여자, 정혜’에서 작은 몸짓과 손짓, 말 한마디로도 관객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냈던 이윤기 감독의 연출 방식은 이 영화에선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한다. 현빈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하는 팬이 아니라면 2시간의 러닝타임은 꽤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별에 관한 정밀화를 시도했지만 소묘에 그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제한된 동선과 표현 속에서도 임수정의 연기는 탄탄한 편이다.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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