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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제2부 집짓기-(12)터무니없는 ‘정화조 도장 값’…결국 소비자만 ‘봉’
시골에서 정화조를 설치하려면, 법적으로는 일반 전원주택용으로 많이 쓰이는 소형 정화조(5인용)도 시공 자격을 갖춘 업체에 맡겨야 한다. 소위 ‘도장’을 찍어주는 업체다. 하지만 시골이 어디 법으로만 되는 곳 인가. 관행적으로 동네 굴삭기 업자가 십장으로 나서 배관 설치 인부 1~2명이 뚝딱 해치운다. 그래도 충분하다. 5인용 소형 정화조의 경우 반나절이면 공사 끝이다.

강원도 H군의 사례를 보자. 지난 2010년 H군 전체를 통틀어 정화조 시공 자격을 갖춘 업체는 고작 2곳 뿐 이었다. 이렇다 보니 소형 정화조 시공은 거의 동네 굴삭기 업자와 배관 인부들 몫이다. 2010년 한 해 동안 각 면 단위 철물점에서만 수십 개씩의 소형 정화조가 팔려나갔다.

여기서 ‘정화조 도장 값’이란 이렇다. 정화조 시공 및 준공 신청을 할 때 법적으로는 정화조 시공자격 업체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워낙 많은 정화조 시공이 이뤄지기 때문에 H군만 놓고 보더라도 자격을 갖춘 2개 업체가 이를 모두 시공하기란 애초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사는 동네 굴삭기 업자들이 맡아서 한다. 대신 서류는 자격업체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제출한다. 해당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자격업체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제출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도장 값이 상대적으로 크게 저렴한 경우다.

그런데 2010년 하반기 H군청에서 갑작스럽게 다른 지역 자격업체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제출한 건축주에게 관내 자격업체의 도장이 찍힌 서류로 바꿔 다시 제출하라고 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군청측은 “먼 지역의 정화조 시공 업체가 소형 정화조 한 개 시공하려고 여기까지 올 리는 없지 않느냐”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H군 관내 자격업체가 고작 2곳뿐이기 때문에 관내 정화조 시공은 어차피 동네 굴삭기 업자들이 도맡아 해왔다. 더구나 H군 관내 자격업체의 도장 값은 30만원으로, 다른 지역 업체(15만원)의 갑절이다.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건축주들은 “도장 값을 두 번 내야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혹시 공무원과 관내 자격업체가 짜고서 이러는 것 아니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H군 관내 정화조를 팔고 있는 철물점 업자들도 크게 반발했다. 지금까지 다 받아주다가 갑자기 왜 이러냐고, 이미 팔린 정화조는 구제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거센 반발이 일자 결국 기존에 팔린 정화조는 구제해 주는 선에서 일단락 됐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사실 소비자(건축주) 입장에선 한 푼이라도 저렴한 정화조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H군청은 지역 자격업체의 도장값 인하를 지도하기는 커녕 되레 그들의 편을 들어 건축주에게 도장 값을 두 번 물리려했다. 한심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소비자들은 지역 가릴 것 없이 이 같은 정화조 도장 값 바가지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화조 시공자격 업체는 단지 서류 처리만 해주는 대가로 도장 값만 개당 15만~30만 원씩 챙기니 이런 수지맞는 장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정부에서 이런 봉이 김선달식 도장 값 장사를 보장해주고 있는 셈이다.

일반 전원주택의 경우 5인용 부패식 정화조의 가격은 철물점에서 대략 35만원 안팎(시공비 별도)이다. 그런데 정화조 시공자격 업체의 도장 값은 지역별로 무려 15만~30만원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화조 시공 자격업체에서 시공 전 과정을 직접 점검해 제대로 시공됐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준공 검사 신청 서류도 건축주가 직접 시공사진을 찍어서 정화조를 판 철물점 주인에게 갖다 주면 이들이 건축설계사무소에 전달한다. 도장만 찍어주고 15만~30만원을 챙기는 것이다. 사실 5인용 정화조는 설치가 간단하기 때문에 이런 도장 값은 소비자 입장에선 지불하지 않아도 될 과외비용이다. 뭔가 잘못됐다. 탁상행정의 결과다. 빨리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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