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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르노빌 25년, 아직 배울 것 많다
‘죽음의 땅’ 체르노빌에는 지금 16억유로(한화 약 2조5000억원) 규모의 공사가 진행중이다. 사람이 살수 없는 곳에 삼성계열사 직원 2만명이 입주해 있는 서초 삼성타운 건설비용(1조원 규모)의 두배가 넘는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26일로 참사 25주년을 맞는 체르노빌 사고는 전세계를 휩쓴 방사능 공포에서 사고 수습과정, 방호벽 재원마련을 위한 국제공조까지 지난 25년간 계속된 원전 사고의 교훈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재원조달 국제공조 등 난제 산적=지난달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986년 발생한 20세기 최악 원전사고의 ‘유령’을 다시 한번 불러냈다. 25년이 지난 지금 체르노빌 원전은 콘크리트 방호벽으로 덮혀 있지만 군데군데 금이 가 추가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고 당시 구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원전(당시이름 레닌 원전) 4호기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을 막기 위해 원전을 콘크리트로 매장하는 ‘석관(石棺)’ 처리를 실시했다. 하지만 당시에 씌운 방호벽의 수명은 최대 10년으로 추가 조치가 요구됐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체르노빌 원전에 새로운 철제 보호막을 덮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폭 190m 길이 200m의 둥근 아치형 지붕을 만들어 2015년까지 통째로 원자로를 덮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여기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16억유로)이 문제다. 우크라이나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규모로 이를 위해 UN은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50개국을 모아두고 ‘기부회의’를 열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놀란 국제사회는 이날 5억5000만 유로를 모았지만 전체 16억유로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후쿠시마에 주는 교훈=체르노빌 사고의 수습 장기화와 막대한 비용부담은 후쿠시마 원전 안정화 작업의 어두운 앞날을 보여주고 있다. 체르노빌의 철제 방호벽이 완공된다고 해도 그 안에는 약 200t의 핵연료가 남아있다. 건물 잔해 등 쓰레기도 30t으로 남아있고 대량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처리방법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긴박한 상황”이라며 “체르노빌 원전의 완전 폐쇄까지는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25일 카사이 아츠시 전 일본원자력연구소장을 인용해 “후쿠시마의 원전사고는 체르노빌과 다르지만 방사능 방출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예측이 불가능해 체르노빌 보다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다시말해, 체르노빌 사고로 유출된 방사선량은 520만 테라베크렐이지만 방사성 유출은 10일만에 멈춘 반면 후쿠시마는 현재까지 체르노빌의 10%(최대 63만 테라베크렐)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지만 유출은 멈추지 않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이달 5일 현재 후쿠시마에서 방출되는 하루 방사선량은 154 테라베크렐로 집계됐다. 여기에 추가 여진으로 인한 새로운 대량 방출 가능성도 여전하다.

요시오카 히토시(원자력학과) 큐슈대 부학장은 “체르노빌이 주는 최대의 교훈은 방사성 물질의 대량 방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당시 미ㆍ일ㆍ유럽의 원자력 강국은 사고를 과소평가해 선진국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특수 사례로 축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쿠시마 사고도 시간이 흐르면 ‘특수사례’로 과소평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마츠모토 요시히사(방사선 생물학) 도교공업대 부교수는 “체르노빌 때는 각국의 연구기관이 피폭 피해등 건강조사를 구체적으로 실시했다”며 이를 교훈삼아 “일본도 후쿠시마 주민이나 원전 작업원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를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체르노빌 원전사고?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6분 구소련(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를 말한다. 국제원자력 사고 평가기준 ‘레벨7’로 현재까지 발생한 원자력 사고 중 최악의 사고로 기록돼 있다.

체르노빌 사고는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달리 인재(人災)였다. 원자로의 가동중단에 대비한 비상발전기 실험을 하다가 원자로의 증기가 폭발했다. 사고 당시 31명이 사망했고 이후 5년간 피폭 등의 영향으로 9000여명이 숨졌다. 현재까지 직간접 피해로 인한 사망자 수가 98만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원자력 주변 30km 이내에 사는 주민 9만2000명은 모두 강제 이주됐다.

뿐만 아니라 방사능 유출에 따른 유전자 변형으로 43만명이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고 토양 등 생태계 파괴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에 유해한 사성 물질이 충분히 제거되려면 대략 90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등으로 떨어져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초래했다. 낙진의 80%가 떨어진 인접국 벨라루스는 전 국토의 1/4이 출입금지 구역이 됐다. 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소련이 투입한 비용도 천문학적인 액수여서 결과적으로 소련이 붕괴되는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당시 원전 실험을 책임졌던 기술자 아나톨리 댜틀로프(당시 55세)는 1987년 소련 법정에서 ‘중대한 운영상의 실수’라는 죄명으로 10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피폭 후유증으로 사고 발생 9년만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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