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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그 자체, 줄리엣…
도발적 여성으로 재탄생·침대선 로미오를 리드하는 격정적 모습…안무가 마이요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가 딱딱한 형식의 틀을 깼다. 불필요하고 과장된 몸짓을 버리고, 친밀한 스킨십을 더했다. 몸짓은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다. 안무가인 마이요가 ‘포스트 클래식 발레’라고 칭한 이유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로지 사랑에 집중하고, 사랑을 위해 끝까지 내달린다. 작품은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도 바로 내 옆에 있는 현재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녔다.

1938년 이보 소타 안무의 발레극으로 초연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1996년 천재 안무가로 불리는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스타일로 재탄생했다. 2000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마이요의 작품을 공연했던 국립발레단이 27~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린다.

국립발레단은 때마침 아시아오케스트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정명훈 감독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만나, 그동안 완성도 면에서 아쉬웠던 ‘발레음악’을 보완했다. 지난 25일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 리허설을 참관,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봤다.

마이요표 강인한 여성상…줄리엣의 도발

“줄리엣은 러브(love), 로미오는 러버(lover)다. 고로 줄리엣은 사랑 그 자체다.”

마이요의 작품에서, 줄리엣은 자신감 넘치고 도발적인 현대 여성이다. 로미오가 주도적으로 사랑을 이끌고, 줄리엣이 순종적으로 사랑을 좇는 원작과 달리, 마이요는 줄리엣을 사랑의 주체로 설정했다. 실제로 그와 20년 넘게 함께 해온 연인 베르니스 코피에테르를 극의 뮤즈(muse)로 삼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80cm가 넘는 키, 육감적인 몸매, 짧은 커트 머리를 한 그녀는 마이요가 그린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줄리엣의 현신(現身)이다. 현역 무용수로 활동중인 그녀는 2002년 김주원과 함께 줄리엣을 맡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줄리엣은 장난기 넘치는 말괄량이다. 유모에게 “나 이만큼 컸다”며 상의를 벗어 가슴을 보여줄 정도로 호기롭고, 첫날밤에는 로미오를 침대 위로 유인해 덮칠 정도로 사랑에 있어 주도적이다. 침대 위에서 남자를 리드하는 모습, 키스신과 베드신은 격정적이기까지 하다. 반면, 로미오는 줄리엣이 이끄는 대로 순종적으로 따라간다.

줄리엣과 로미오의 첫 만남도 독특하다. 아직은 풋내기 어린아이 같은 로미오가 움찔하며 손을 피하려 하자, 줄리엣은 거침없이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낚아챈다. “이 작품을 ‘줄리엣과 로미오’로 하고 싶었다”는 안무가 마이요의 말처럼, 줄리엣에 의한, 줄리엣을 위한 작품이다.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더이상 사랑에 순종적인 여인이 아니다. 마이요는 줄리엣을 침대에서 로미오를 리드하는 등 사랑에 주도적인 여성으로 재해석했다.

고전의 재해석…‘로렌스의 몸짓 주목하라’

마이요의 작품에서는, 줄리엣을 비롯한 모든 캐릭터가 재창조된다. 원작과 달리 극을 주도하는 인물은 ‘로렌스 신부’다. 관전포인트는 신부의 몸짓만 잘 관찰해도 극의 흐름을 꿰뚫을 수 있다는 점.

원작에서 신부는 결혼식 신에서 잠깐 등장하지만, 이 작품에선 극 초반부터 끝까지 강렬한 존재감을 표출한다. 작품의 첫 장면도 신부가 이끈다. 신부와 복사(服事ㆍ신부의 시중을 드는 사람) 두 명이 빚는 몸짓은 온갖 상징적인 메시지로 가득하다. 신부가 두 복사를 만나게 하려다가, 결국 실패하고 절규하는 장면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암시한다. 이후에도 신부는 계속 무대 위 어딘가에 존재한다. 때로는 시간을 늘리는 마술을 부리기도 하는 ‘신적인 존재’다.

마이요는 우매한 인간 군상을 흰 옷을 입은 두 명의 복사로 상징화했고, 신부를 신적인 존재로 끌어올려 극을 주도하게끔 했다. 그 외에도 줄리엣의 엄마 캐플릿은,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캐릭터다. 그의 몸짓은 여성성을 배재한 강렬함으로 가득하다.

발레극의 통념을 깬 ‘영화 같은 발레’

클래식 발레의 문법도 모두 깼다. 발레의 언어인 마임의 룰을 깨고, 보다 자연스런 감정 표현에 집중한다. 주로 손끝 발끝이 빚는 몸짓에 집중하는 것도 마이요 스타일이다. 쓸데없이 보여주기 위한 장면을 배제하고, 물 흐르듯 스토리를 이어간다. 발레 문법보다는 영화나 드라마의 영상 문법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중간 중간 로렌스 신부가 등장해 시간을 늘리는 슬로우 모션 기법을 쓰기도 한다. 또 극 속에 극을 포함시켜, 극중 주인공들의 결말을 암시하는 인형극이 등장하는 등 극적인 장치가 볼거리를 더한다.

귀가 즐거운 발레…정명훈 감독과 앙상블

‘로미오와 줄리엣’ 배경음악인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리드미컬하며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매력을 살리기 좋다. 평소 발레음악에 관심이 없던 정명훈 감독도 “프로코피예프만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오케스트라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다. 줄리엣 역을 맡은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는 “보통 발레에선 미리 녹음된 음악(MR)보다 좋은 오케스트라 연주는 별로 없다고들 하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무용수들이 춤 출 때 확 빠져들 수 있는 힘 있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무용수들의 몸짓과 시향의 사운드를 결합시킨 정 감독은 깔끔하면서도 힘 넘치는 음악으로, 극의 한 축을 완벽하게 책임졌다. 특히 3막의 마지막 신에서는 서울시향이 만들어내는 깊고 웅장한 사운드가 감동을 한껏 끌어올렸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은 “발레를 하면서, 항상 음악이 아쉬웠는데, 이번 계기로 완벽한 음악의 힘을 알게됐다”며 “눈과 귀 모두 즐거울만한 공연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27~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0-1300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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