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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처럼 똘똘뭉친 조직이 가장 위험하다
계층화된 조직체계

변화무쌍한 환경엔 되레 걸림돌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 해결책 모색

진화론적 해법에 귀 기울여볼만




탐구적인 영국왕립예술학교 대학원생 토머스 트웨이츠(디자인학과)는 어느 날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보자.’ 그는 만만한 걸로 토스터를 골랐다. 일명 ‘토스터 프로젝트’다. 싸구려 토스터를 구입해 분해했다. 단순해 보이는 네모난 토스터 안에 들어 있는 부품은 무려 400여개. 트웨이츠는 웨일스의 옛 광산까지 철광석을 구하러 갔다. 그러고는 15세기 기술로 철을 녹여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감자 전분으로 플라스틱을 만들어보려던 시도는 곰팡이와 굶주린 달팽이들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이런 식으론 토스터 하나 만드는 데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토스터보다 훨씬 단순한 물건을 만드는 데도 전 세계적인 공급망과 전 세계에 흩어진 개인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대다. 문제는 토스터가 아니다. 뉴욕이나 런던의 거대 경제도시에서 이런 물건은 100억개에 이른다. 시스템의 문제라면 그 연관관계는 그 끝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수많은 경쟁상대와 수시로 변화하는 기업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막으려면?’ ‘개발도상국을 도울 실질적인 방법은?’ 등 문제는 만만치 않다.

베스트셀러 ‘경제학 콘서트’로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은 팀 하포드가 이번에도 독창적인 관점을 내놨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통과하는 법이다.

3년 만의 신작 ‘어댑트’(웅진지식하우스)에서 팀 하포드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관점으로 진화론적 해법을 제시한다. 즉 변이와 선택, 시행착오와 적응이다. 복잡하게 얽힌 세계 속에서 앞서 답을 내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전문가라도 예외가 아니다. 여러 시도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작은 도태되고 효과가 있는 쪽을 따라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다. 얼핏 성의 없어 보이는 해답이지만 진화론적 설명에 기대면 설득력이 있다.

그가 선행된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보여주는 사실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통념을 뒤집는다.

그 하나가 가족같이 견고한 조직이다. 대부분의 조직은 계층화된 조직을 갖고 있다. 최상단에 리더가 위치하며 리더는 현장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다시 아래로 지시해 물 흐르듯 한몸처럼 굴러가게 한다. 하지만 팀 하포드는 이런 일사분란한 조직은 상황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말한다. 단합된 팀은 집단 사고로 후퇴하고 명령체계는 정보를 정체시켜 피드백이 상단에 도달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체계가 없고 무질서하며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조직이 더 효과적이란 얘기다.

조직이 아무리 유연하게 대응해도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더욱 다양한 변이와 실험이 필요하다. 1675년 영국왕립천문대 천문학자들이 풀어내지 못한 경도 문제를 일반에 공개한 결과, 시골 목수 존 해리슨이 해상시계를 만들어 해결한 게 한 예다.

선택의 문제는 더 어렵다. 무엇이 효과적이고 아닌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누스가 세운 그라민은행을 예로 든다. 그라민을 세우는 데 일등공신은 바로 유누스가 농부들에게 돈을 떼인 시행착오였다.

저자는 선택을 하는 데 상황을 잘 들여다보는 ‘벌레의 시각(worm’s-eye view)’을 강조한다. “사물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아야 날카롭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아마추어 환경운동가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좋은 의도를 갖고 생활 속에서 실천한 일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결정들이었음을 보여주는 예는 선택의 어려움과 복잡성을 인식시키기에 충분하다.

시행착오에서 배우는 게 성장이라면, 가장 시급한 사안은 리먼브러더스에서 배우기라 해도 틀리지 않다. 저자가 제시하는 제2의 리먼 사태를 막는 안전 해법은 ‘강하게 결합된’ 시스템의 완화다. 연관관계를 느슨하고 좀 더 유연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적응의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가 시행착오, 즉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음을 지적한다.

불확실성 시대,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 점은 새롭다. 그에 따르면 기업은 실패하기 위해 존재한다. 안심하고 실험하고 실패하면서 혁신을 일궈내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기업은 그 역할이 크다. 적응능력을 믿고 실패할 수 있는 모험을 감행하라는 저자의 독려가 오랜 인류의 진군나팔소리처럼 들린다.

어댑트/팀 하포드 지음, 강유리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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