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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현대미술 거장 칠리다 작품전
일생에 거쳐 ‘공간’을 탐구한 스페인의 조각 거장 에두아르도 칠리다(Eduardo Chillida)의 전시가 서울 회현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신세계갤러리에서 개막됐다.

20세기 현대조각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칠리다(1924~2002)는 스페인 바스크 지역 출신으로, 마드리드와 파리에서 잠시 활동했으나 생애 대부분을 고향인 산세바스티안에 머물며 작업했다. 마치 수도자처럼 살며 철학, 문학, 음악, 미술을 넘나드는 주제의식을 통해 세계인이 공감할만한 절제된 예술세계를 창조했다.

칠리다는 공간에 대한 단편적 생각을 뛰어넘어 새로운 개념을 조형적으로 구현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일관되게 ‘공간’이란 주제에 몰두한 작가는 돌, 철, 점토, 종이 등 각종 재료를 넘나들며 안과 밖, 채움과 비움, 있음과 부재, 실체와 여백 등을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는 생전에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으나 공교롭게도 국내에선 본격적인 전시가 없었다. 따라서 신세계가 칠리다의 유족및 칠리다 레쿠 미술관(Chillida-Leku Museum)과 손잡고 여는 이번 전시가 첫 본격적인 한국 개인전인 셈이다. 전시에는 조각, 콜라주, 입체화된 콜라주 방식의 그라비테이션 시리즈, 판화, 아트북 등 칠리다의 다양한 면모와 창작혼을 살필 수 있는 작품 61점이 나왔다.

칠리다는 마드리드에서 건축과 미술을 공부한 후 파리로 이주해 조각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곤 바스크 지방에서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발견하곤 첫 번째 추상 조각 ‘일라릭(Ilarik)’의 재료이자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을 실험하게 될 재료인 철로 아란싸수 바실리카의 문을 제작하는 등 공공작업을 시작했다.

1958년 제29회 베니스비엔날레 조각부분 대상을 수상한 것을 필두로 1960년 칸딘스키상, 1966년 빌헬름 렘브룩상, 1985년 카이저링미술상, 1991년 일본 임페리얼 상 등 수많은 국제미술상을 받았고, 전세계의 유수의 미술관과 공공장소에서 전시를 가졌다. 작고하기 2년 전인 2000년에는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 자신의 개인미술관인 칠리다-레쿠 미술관을 개관했다. 그러나 산(山) 한 가운데에 세우려 한 공공조각 ’틴다야 프로젝트’의 완성은 못 이룬채 눈을 감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즈 (Octavio Paz 1914-98)는“칠리다의 작품은 공간을 상징한다. 각 작품은 모두 다른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철은 바람을 말하고, 나무는 노래를 말하고, 설화석고는 빛을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작품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공간이다”고 평했다.

평생동안 50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칠리다의 작업은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공간에 대한 관심을 지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공통점. 초기 구상적이고 전통적인 스타일로 친지들의 초상화와 여성 누드 등을 시도했으나 이후 여러 개의 선들을 겹쳐가며 추상작업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1949년 살롱 드 메에 석고조각을 출품해 주목받은 칠리다는 스페인 에르나니의 낡은 대장간에서 발견한 철을 이용해 자신만의 간결하고 독특한 조형언어를 구축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목재와 설화석고로 조각을 제작했는데 설화석고의 반(半)투명성을 통해 빛과 건축을 조망하는 새로운 테크닉을 구사하기에 이른다. 이어 1970년대에는 콘크리트로 공공조형물을 집중적으로 제작했는데 "건축재료인 콘크리트에 예술적 특성을 부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칠리다는 또 부드럽지만 굳으면 표면이 단단해지며 대지를 연상케 하는 샤모트 점토로 ‘루라크(Lurrak)’,‘옥사이드(Oxides)’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칠리다는 종이작업도 많이 남겼다. 종이로 드로잉, 콜라주를 시도했는가 하면 ‘중력’ 시리즈에선 종이를 여러 겹으로 잘라낸 다음 일종의 부조처럼 실로 내걸어 다양한 면들이 공간을 사이에 두고 은은히 존재하게 했다. 서울 신세계갤러리의 칠리다 전시는 12월 12일까지 계속된다. 02)310-1924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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