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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기자의 art&아트>시간과 공간 사이…채울수 없는 그리움을 담다
세계적 작가 칸디다 회퍼·토마스 데만트 사진展
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展

공감과 사물의 연결성 천착

獨 노이에미술관 촬영

분단의 아픈 상처 담아


PKM트리니티갤러리 토마스 데만트展

공간적 장면, 입체적 재현

촬영 후 모형파기도 예술로

세계 미술계 시선 한몸에



한해를 마무리하는 전시 가운데 사진전이 유난히 많다. 그만큼 사진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공간의 ‘시간성’ 및 ‘실재와 허구의 간극’을 성찰한 독일작가들의 사진작업이 눈에 띈다. 칸디다 회퍼(67)와 개념미술가 토머스 데만트(47)의 전시를 찾아가봤다 

▶인간은 부재하나 그 숨결은…칸디다 회퍼展=세계적인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개막됐다.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종전의 혼란 속에서 파괴된 건물들 속에서 자란 회퍼는 쾰른대 졸업 후 한동안 인물 및 광고사진을 찍었다. 그 후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베른트 베허 교수에게 사사하곤 미술관, 극장, 도서관, 서점 등 다양한 공공장소의 내부를 찍는 예술사진가가 됐다. 그는 공적 공간의 건축학적 관심을 화두로, 구상적 평면성에 기반한 명료하면서도 완결성있는 작업으로 이름을 떨쳐왔다.

회퍼의 사진은 피사체가 된 공간 내부의 오브제와 환경을 그들이 자리한 장소와 진열방식이 갖는 물질적 한계를 뛰어넘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모와 축적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 작가는 “나는 공간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곳에 놓여진 사물들로 인해 어떻게 변화됐는지, 공간과 사물이 서로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담아내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2009년에 재개관한 베를린의 노이에미술관 내부를 촬영한 사진들이 나왔다. 19세기 중반 건립된 노이에미술관은 프러시안 건축양식의 미술관. 그러나 2차대전 중 파괴돼 60년간 폐허로 방치됐다가 1997년 영국 건축가 치퍼필드가 복원작업에 뛰어들어 다시 문을 열었다.

동베를린 노이에미술관의 중세실을 통해‘ 장소가 품은 역사성’을 보여주는 칸디다 회퍼의 ‘Neues Museum XVI’

작가는 동서독 분단의 아픈 상처를 품고 있는 이 미술관의 모습에서 공간의 역사적 변천과 그 내부에 현존하는 유물에 깃든 시간성에 매료됐다. 마침 “복원과정과 복원 이후를 촬영하고 싶지 않느냐?”는 건축가의 제안도 있어 13년을 함께 작업했다. 회퍼는 미술관 내부의 여덟 곳을 촬영해 시간의 흔적이 남긴 건물 고유의 모습과 화려한 장식, 선사 및 중세 유물들이 뿜어내는 역사성을 담아냈다.

그 중에서도 ‘노이에미술관 IX’는 8각형의 돔으로 이뤄진 미술관의 아름다운 홀과 기원전 1340년대 고대 이집트의 ‘절세미모의 여왕’인 네페르티티의 두상 조각을 촬영한 작품으로 ‘인간의 부재와 공간의 역사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대표작이다.

회퍼는 지난 40여년간 전 세계에서 총 100회 이상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 카셀 도큐멘타, 베니스비엔날레에도 참여했다. 12월 25일까지. (02)735-8449

▶실재와 허구에 대한 탐구…토마스 데만트展=요즘 세계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토마스 데만트의 첫 한국 전시가 서울 청담동 PKM 트리니티갤러리에서 개막됐다. 전시에는 2009년부터 제작한 사진작품 10여점이 내걸렸다. 

대 참사를 초래한 후쿠시마 원전 제어실을 종이로 재현한 뒤, 이를 사진으로 촬영한 토마스 데만트의 ‘콘트롤룸’

데만트는 독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조각을 전공했으나 요즘은 독특한 개념미술에 빠져 있다. 그는 역사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나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공간적 장면’을 입체모형으로 재현한다. 종이로 제작된 공간은 사람, 또는 텍스트가 부재해 왠지 서늘하고 낯선 분위기다.

그리곤 그 상황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모형은 파기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모형을 파기하는 과정 또한 작품으로 간주한다는 점. 이처럼 설치, 사진 등의 장르를 통합, 해체하는 데만트의 작업은 사진의 특성인 ‘현실의 충실한 재현’을 전복하고, 사진의 교묘한 조작과 허구성을 예리하게 폭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상과 현실, 평면과 입체, 공간과 시간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접근하며 현대미술의 개념적 다양성과 명료함을 보여주는 시도는 동시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데만트는 파리 까르띠에파운데이션, 뉴욕 MoMA 등 각국의 유명 미술관에서 이른 나이에 초대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내년 1월 10일까지. (02)515-9496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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