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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걸어놓으니 좋긴한데 두달간 맘조릴것 생각하면.."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에 해당되는 그림들을 모아 회고전을 꾸며놓으니 모두들 근사하다고 하네요. 제가 보기에도 참 멋져요. 앞으로 100년, 200년 지나면 이런 그림들이 국보며 보물이 되지 않겠어요? 신관 지하 전시장에 걸린 푸른 점화(點畵) 앞에선 미동도 안한채 감상하는 이들도 있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전시가 끝날 때(~2월26일)까지 두달간 맘 조릴 걸 생각하면,아이고... 작품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안가게 잘 전시해, 소장자에게 돌려주기 전까진 두다리 못 뻗고 잘 거에요"

아들 도형태 사장에게 갤러리현대의 대표이사 자리를 넘겨준 뒤론 여간해선 공식석상에 나서지 않던 박명자(69) 갤러리현대 회장이 오랫만에 기자들과 만났다. 박 회장은 오는 6일 개막되는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전에 앞서 열린 전시 프리뷰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외 미술계를 자주 드나드는 아들(도형태 대표)이 제게 그래요. 외국 미술관계자들이 ’한국근현대 미술가의 화집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정작 내놓을 게 없다고 말이죠. 그래서 1차로 작고작가인 장욱진, 박수근 화백의 국영문(國英文) 대형 도록을 제작했어요. 그리고 이번이 세번째인데 생각보다 너무 힘드네요. 작품 소장처를 수배해 빌려와 촬영하고, 글을 부탁하고, 전시를 꾸미는 게 점점 어려워져요. 컬렉터들은 20~30년 전에 김환기 작품이 좋아 수집한 건데, 이같은 행동을 칭찬을 못해줄망정 (작품값이 올랐다고) 부정적으로 보려는 이들이 많아 작품을 잘 안 내놓으려고 하거든요. 대부분은 처음 작품을 산 뒤 팔지않고 애지중지 간직하고 있는 애호가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박 회장은 이번에 65점의 김환기 작품을 빌려와 전시를 꾸렸다. 힘들다고 했지만 이번 전시는 따라서 미술관급 전시가 됐다. 전시작 중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빌려온 ’영원한 노래’를 제외하곤 모두 개인 소장자로부터 빌려왔으니 한국 근현대미술 부문에서 박명자 회장의 독보적인 네트웍과 전문성을 다시금 입증해주는 대목이다.

"얼마 전부턴가 좋은 작품을 갖고 계신 소장자들이 제 전화를 잘 안받으세요. 작품 빌려달랄까 봐서죠. 그래서 이번엔 ‘세계에 내놓을만한 국영문 혼용 명품(名品) 도록을 제작하니 마지막으로 빌려달라’고 떼를 썼죠. 또 ‘김환기 작품의 정수만 모은 회고전인데 그 그림이 빠져서야 되겠느냐’고 매달리기도 했고요. 다행히 문화예술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 응하셨지만 당분간은 이같은 규모와 수준의 김환기 전시는 어려울 듯 싶네요" 

그는 "김환기 화백은 정말이지 작업에 올인하신 분이세요. 오죽하면 목 디스크까지 걸리셨겠어요? 작업량도 엄청났죠. 당시 화가로는 유례가 없게 3000여점을 남기셨으니까요"라며 "제가 반도화랑에 근무할 때도 이따금 들르시긴 했지만 워낙 큰 그림을 많이 그리셔서 개인전은 서울 중앙공보관 등에서 하셨어요. 반도화랑에선 1959년에 일종의 소품에 해당되는 과슈작업을 모아 개인전을 열긴 했지만요"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박수근, 이중섭같은 국민화가에 비해 김환기 화백은 대중에겐 좀 덜 알려져 있지만 구상은 구상대로, 또 추상은 추상대로 고른 수준과 예술성을 보이고 있고 무엇보다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아름답고 뛰어난 작품을 많이 제작했던 화가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우리에게도 피카소 못지않게 좋은 작품을 남긴 작가가 있음을, 그리고 한국근현대미술의 우수성에 당당히 자긍심을 가져도 됨을 입증하는 작품이 있음을 함께 확인하고 싶다는 것. 

박 회장이 수년간 공들여 막을 올리는 ’김환기 회고전’은 서울 경복궁 앞 갤러리현대 본관과 신관에서 열리며, 관람객과 함께 하는 다양한 이벤트도 이어진다. 관람문의 (02) 2287-3500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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