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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아트> 蘭竹의 덕과 절개…고고한 墨香으로 임진년을 열다
학고재갤러리 올 첫 전시회 ‘소호와 해강의 난죽전’

구한말 서화의 양대산맥

소호 김응원·해강 김규진

서구미술과의 공존 모색

역량·업적 재평가 계기로



“푸른 떨기 속에 붉은 줄기/ 꽃은 소담하나 향기는 넘치네(綠玉樷紫玉條/幽花疎淡 更香饒).” 기암괴석 사이로 아름답게 핀 난초를 예리하면서도 유연하게 그려낸 소호 김응원의 ‘석란도’에 붙은 부제다.

“맑은 바람, 곧은 절개(淸風壹節).” 세찬 바람 속 꼿꼿한 대나무를 그린 해강 김규진의 ‘풍죽도’에 달린 사자성어다.

소호 김응원(小湖 金應元)과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은 구한말 개화기를 풍미했던 서화가다. 난(蘭)과 죽(竹)에서 최고봉이었던 이들의 그림은 내로라하는 지식인과 세도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요즘 현대인에겐 저들의 이름이 매우 낯설다. 작품을 접할 기회도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 미술계에서 근대미술, 특히 근대서화(書畵)는 천덕꾸러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 소격동의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가 임진년 첫 전시로 ‘소호(小湖)와 해강(海岡)의 난죽(蘭竹)전’을 마련했다. ‘좀 고리타분하겠군!’ 하고 전시장을 들어서면 참신한 전시 구성과 달라진 액자가 “아, 난죽이 현대 전시장과도 썩 잘 어울리네” 하고 감탄하게 한다. 출품작은 소호 20점, 해강 13점, 합작품 1점이다.

보름달 아래 무리지어 서있는 굵은 대나무를 당당하게 표현한 해강 김규진의‘ 월하죽림도’. 가로 3.5m의 대작으로, 좌우 구도가 좋으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죽순을 곁들인 것도 특이하다.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이번 전시는 소호와 해강의 난죽(蘭竹)을 통해 한국 근대기 서화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기획됐다. 난죽은 개화기 지식인의 표상이자, 새로운 미학이었다. 특히 깊은 숲속에 나는 ‘난(蘭)’은 알아주는 이 없어도 은은한 향을 뿜는다는 점에서 곤궁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채 덕을 세우는 군자와 닮았다 하여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소호 김응원(1855~1921)은 이 같은 난을 더없이 빼어나게 묘사했다. ‘당대 최고’였던 석파 이하응(대원군)의 석파란을 계승한 그는 ‘소호란(小湖蘭)’이란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석파와 화풍이 매우 유사해 한때 ‘대필화가’로도 활동했던 소호는 석파에 비해 난엽이 가늘고 단아해 한결 날카롭다. 동세 또한 활달해 그만의 독자적 경지를 이뤘다. 대원군이 추사 김정희의 난법인 사의란(寫意蘭)에 치중했던 데 반해 소호는 사의란(寫意蘭)과 사생란(寫生蘭)을 겸하는 중간적 입장을 취한 점도 다르다.

한편 ‘죽(竹)’은 그 사철 푸르름이 군자의 절개에 비유돼 변치 않는 가치를 상징하고, ‘평안’의 의미도 지닌다. 묵죽화는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 전(全) 시기에 걸쳐 사랑받았다. 강세황, 이정, 신위가 뛰어났고, 근대기에도 이름을 날린 묵죽 화가가 많다. 근대의 묵죽화는 보다 감각적ㆍ장식적으로 변모했는데 그 선두에 섰던 이가 해강 김규진이다.

소호보다 13살 연하였던 해강 김규진(1868~1933)은 조선시대 묵죽을 더욱 발전시킨 작가로 특히 굵은 ‘통죽’에 능했다. 근대 우리 화단에 통죽이 크게 유행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묵죽과 다른 구성, 기법이 근대 화가들을 매료시켰던 것.
소호 김응원‘ 애란도’.

이번 전시에 나온 10폭짜리 ‘월하죽림도’는 해강의 역량이 집대성된 역작이다. 화면 가득 통죽을 당당하게 그려넣은 뒤, 바람에 나부끼는 댓잎을 활달하게 곁들여 역동적인 화면효과를 살렸다. 줄기는 중간먹으로 그린 후 농묵의 가느다란 선으로 죽간을 표현한 것도 돋보인다. 한 쪽으로 날리는 짧은 댓잎으로 세찬 바람의 느낌을 표현하는 그의 기법은 이후 고암 이응노 등에게 폭넓게 영향을 끼쳤다.

우찬규 대표는 “우리네 삶이 난향처럼 향기롭고, 대바람처럼 평안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근대미술 자료가 좀 더 많이 찾아지고, 연구돼 더 많이 사랑받았으면 하는 뜻에서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소호와 해강 두 사람은 예술가인 동시에 격동의 시대에 서화학교 창설에 앞장서는 등 교육과 전통의 현대화에 힘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를 포함해 근대기 서화가들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특히 김응원은 예술적 성취에 비해 연구가 더욱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출품작들이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온 것도 국내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해 흘러나갔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뒤늦게나마 소호와 해강의 작품을 조망한 이번 전시는 서세동점의 세계사적 흐름에 따라 근대 서구미술과 서화의 공존을 모색했던 개화기 선구자들의 실험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울러 근대 서화의 양식과 당시 시대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수확이다. 2월 19일까지. 무료 관람. (02)720-1524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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