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금융위원장에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금융감독원장에 정은보 한미 방위비협상 대사를 각각 내정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납득할만한 인사다. 이보다 적절하고 무난하기도 어렵다. 이런 정석을 선택할 참이었으면 왜 3개월 넘게 금감원장을 공석으로 방치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우선 두 사람의 금융 전문성과 역량은 더 거론할 필요도 없다. 금융위, 기재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쌓은 금융 필모그라피는 한 기관을 맡아 정책을 지휘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사태 등 굵직한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처리한 것도 그들이다. 특별한 정치편향성도 보이지 않았다. 재산이 적은 건 아니지만 워낙 좋은 집안 환경에서 출발한 걸 감안하면 손가락질받을 부의 축적 과정도 없다. 다주택자도 아니다. 고 내정자는 인사청문회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고시 28회 동기로 선의의 경쟁을 펼쳐 온 사이니 종전과 같은 금융위와 금감원 간 불화 가능성도 적다. 금감위 노조가 “반대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낸 것도 이를 방증한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은 금융관료로서는 가장 선망하는 자리다. 하지만 임기 1년도 남지 않은 정부의 마지막 금융수장은 수락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정치권의 입김을 많이 받는 자리다. 다음 정부에서 임기를 보장해줄지도 알 수 없다. 임기 후엔 3년 동안 유관기관 재취업마저 제한된다. 교수라면 몰라도 관료들에겐 3년이나 발이 묶이는 일이다. 고 내정자는 장관보다 좋다는 금통위원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상태다. 한미방위비 협상을 잘 마무리 지은 정 내정자도 잊힌듯 시간을 보내다 다음 정부에서 하마평에 오르는 게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관료로서의 영광과 책임감을 선택했다. 청와대의 지명만큼 그들의 수락도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막중하다. 무엇보다 이제 곧 가계부채와의 일전을 치러야 한다.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금융긴축으로의 전환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고 내정자도 즉각 “가계부채, 자산가격 변동 등 경제·금융 위험요인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해 나가겠다”면서 가계부채 대책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거론했다. 정 내정자도 “법과 원칙에 기반한 금융감독, 금융소비자 보호 노력 지속”을 강조했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의 화두는 관치금융이다. 권력으로부터는 막아야 하고 업계에 대해선 자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해 사달이 벌어진 사례는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