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구매력 척도로 간주되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0년 만에 대만에 추월당했다.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2661달러로, 전년보다 7.7% 줄었다. 반면 대만은 3만3565달러로, 전년(3만3765달러)과 비슷했다. 한국과 대만의 국민소득이 역전된 것은 2002년 이후 20년 만이다.
대만에 뒤처진 데에는 무엇보다 환율의 영향이 컸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 부진과 중국 경기침체로 수출로 버는 달러는 줄어들고 원자잿값 급등에 따라 수입에 쓰는 달러는 많다 보니 한국의 환율상승(원화절하)은 다른 나라보다 유달리 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연평균 달러 대비 원화가치 하락비율은 12.9%로, 대만달러 6.8%의 두 배에 육박했다. 지난해 우리 대기업들이 매출은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감소하는, 이른바 ‘호황형 적자’의 양태를 보인 것도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비용이 증가한 탓이다.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세계 1위인 TSMC 등 대만의 기업이 달러를 벌면서 대만달러의 가치를 방어한 것과 대조된다.
문제는 환율 리스크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금리를 호령하고 있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7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소비자물가 등) 최근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최종적인 금리 수준이 이전 전망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는 당장 오는 21∼22일 열리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빅스텝(0.5%포인트 인상) 등 다시 금리 인상 가속페달을 밟을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연내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렇게 되면 현재 4.50~4.75%인 기준금리의 올 연말 전망치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의 눈치를 보며 기준금리 3.5%에서 속도조절에 들어간 한국은행도 한미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미 간 격차가 멀어질수록 외국 자본이 더 많이 빠져나가고 달러 가뭄으로 원화 값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12개월 연속 무역수지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무역적자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환율 급등과 고물가로 이어져 국민의 실질소득을 더 쪼그라들게 한다. 가처분소득이 떨어지면 구매력 하락으로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내수 침체까지 덮치면 저성장의 늪에서 장기간 허우적대야 한다. 정부는 수출기업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전후방 지원하는 것이 결국 경제 전반을 살리는 길임을 인식하고 정책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