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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입법폭주와 거부권 행사’ 악순환 끝내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13일 열린 본회의에 양곡법 개정안 재의결을 강행했지만 최종 부결됐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을 다시 밀어붙이는 것은 오기정치다. 친야 매체는 거부권 행사에 방점을 찍겠지만 거부권 행사의 빌미를 준 쪽은 민주당이다. 입법 폭주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농부는 기업가다. 무엇을 얼마만큼 생산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하는 기업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쌀을 경작했으니 정부가 수매해 달라는 것은 억지다. 그 논리가 맞다면 대졸 미취업자를 국가가 공무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대학 인가를 내준 것은 정부이기 때문이다. ‘약자 코스프레’는 더는 통하지 않으며 정부 예산은 화수분이 아니다.

입법 폭주와 거부권 행사 악순환이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이 민주당 주도로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직역 간 과도한 갈등’ 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취임 후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간호법은 현재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간호사의 업무를 떼어내 독자적인 법률로 규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료인’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와 간호법에 따른 간호사로 이원화된다. 그럼에도 간호사는 여전히 의료인이기 때문에 간호법 외에 의료법에서 정한 각종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의료법은 불가피하게 ‘개정’돼야 하며,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법안의 명칭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직업을 의미하는 ‘간호사법’ 대신 직무의 의미를 내포한 ‘간호법’이 쓰였기 때문이다. 이는 넓은 의미의 ‘의료’ 범주에 속해 분리될 수 없는 ‘간호’를 의료에서 떼어내 독자적 업무 영역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간호와 치료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이번에 통과된 간호법 제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다.

간호사협회는 나름 정당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만성 질환 중심으로 의료 환경이 바뀌어 노인과 만성 질환자 간 의료적 치료와 돌봄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간호업무의 장소가 의료기관에 한정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지역사회 돌봄을 간호사가 직접 할 수 있게 되면 초고령 사회 진입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할 돌봄 서비스 수요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입장은 다르다. 현행 의료법의 규율 대상은 의료기관에 한정되지만 간호법을 통해 ‘지역사회’까지 범위를 넓히면 추후 독자적인 진료, 나아가 간호 개원까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호법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보조 인력으로 기능하게 된다. 결국 간호사는 의사로부터 기능적으로 부분 독립하고 간호조무사를 지도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간호법에 ‘간호사 특혜법’이란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의료 서비스는 ‘결합된 수직 흐름’이어야 한다. 진단·처방·처치·간호·조무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환자에 대한 최상의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 치료의 완결성을 위해서 의사와 간호사 간 수평적 협업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 사고 시 책임소재를 두고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좁게 쪼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갈라치기’는 자제해야 한다. 정치는 통합의 기술이지, 갈라쳐 자기 편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혹여라도 간호사 수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의사와 숫자는 많지만 결속력을 발휘하기에 조직력이 부족한 간호조무사 대신 간호사의 입장을 수용하는 선택을 했다면 이는 낮은 셈법이 아닐 수 없다.

입법 폭주와 거부권 행사는 그 자체가 독선이고 정치적 상처다. 힘으로, 머리 숫자로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대의와 경제원칙에 부합되는 큰 정치를 기대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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