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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우리 삶에 들어온 수소...막연한 두려움 없애야

초기 인류에게 불은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두려워하되 결코 피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탐구하며 공포를 극복하려 노력했고 점차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해갔다. 그 결과, 불이라는 무한의 에너지를 얻게 되면서 삶은 혁신적으로 변화했다. 불은 여전히 에너지의 근간을 지배한다. ‘제2의 불’이라고 불리는 전기도 마찬가지다. 화력발전소에서는 화석연료를 연소해 터빈을 돌리고 이를 기반으로 전기를 만든다. 전력 생산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모든 에너지의 출발점에 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석연료는 진보와 풍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해왔다. 그래서 최근 에너지업계에서 대안으로 주목하는 것이 수소다. 수소는 연소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며 부산물로 물만 남기기 때문이다. 수소는 150만년 전 불의 발견에 필적할 만한 진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수소가 대량 공급되기 시작하는 올해가 그 역사적 특이점이 될 수 있다. 연말부터 인천에서 생산되는 최대 3만t 액화수소를 기점으로 국내 수소경제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빠르게 구축되고 있는 수소생태계와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미심쩍은 시선 사이의 간극은 좁혀야 할 과제다. 대부분 수소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점에서 먼 옛날 불을 마주하며 두려움을 느꼈던 고대 인류의 모습이 투영된다. 과학적 팩트를 기반으로 막연한 공포감을 걷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수소는 지금까지 상용화된 에너지원 중 가장 안전한 연료라는 것이 과학계의 결론이다. 무엇보다 수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 중 가장 가볍다. 대기에 누출돼도 빠르게 상승해 폭발과 연소의 위험이 거의 없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게다가 수소의 발화점은 575도로, 자연 상태에서 발화할 가능성 또한 매우 작다. 일부에서는 수소폭탄을 예로 들며 수소충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한다. 정작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수소와 수소폭탄에 사용되는 수소가 전혀 다른 물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수소폭탄은 일반 수소로는 만들 수 없으며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1억도 이상의 고열이 공급돼야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치는 가솔린, LPG보다 안전하다는 것이 수소가 가진 물리학적 본질이다.

LA, 베를린,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를 가보면 주택가와 상가 한가운데에서 수소충전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나라들도 처음부터 주민수용성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검증한 결과에 대한 존중,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냈다.

한국은 ‘세계 1위 수소강국’을 국가비전으로 내걸고 정부와 기업이 내실 있게 수소경제 시대를 준비해왔다. 이제는 수소경제 시대에 걸맞은 합리적 국민 의식과 이를 끌어올리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 동반돼야 할 시기다. 과학에 근거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수소에 대한 불필요한 편견을 거둔다면 글로벌 수소 1위 국가의 꿈도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문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

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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