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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 칼럼]아, 어쩌다 0.6까지…출산율의 벼랑끝 경고
3분기 합계출산율 0.7명 역대 최저치
4분기엔 0.6명대로 내려앉을 우려 커
올해 출생아수 25만명대로 감소할듯
50년전 100만명대 비하면 4분의 1로
저출산위기 극복 근본대책 세울때
상상초월 파격적 지원도 고려할 만

논설실장

강원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최모(35)·김모(34) 씨 부부의 슬하에서 세쌍둥이가 출생해 지역 주민들의 축하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세쌍둥이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횡성군 제공·연합]

“기찻길 옆에는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입심 건 동네 청년은 새벽 기차 화통에 놀라 잠깬 어른들이 이불자락 펄럭이며 애들만 퍼질러놨다고 했다.” 중년 이상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1980년대 초반 베스트셀러였던 김홍신의 ‘인간시장’. 비리와 부조리 현장을 찾아다니며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는 ‘장총찬’을 내세워 강력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인간시장은 우리사회 일대에 ‘영웅 신드롬’을 일으켰다. 장총찬은 시대를 앞선 80년대의 어벤져스였다. 도시 음침한 뒷골목 범죄자를 응징하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이상의 시대 아이콘었다.

위 구절은 인간시장 시리즈 1편 첫 문장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끄집어 내본 것이니 100% 정확한 문장은 아니다. 원문은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도 대충 그런 글이었다. 40년전에 읽었던 게 얼추 윤곽이라도 지금 떠오른다는 게 스스로 놀랍다. 아마, 속으로 낄낄대고 봤던 그 문장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 있었나 보다. 응큼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랬다. 그땐 동네방네 아이들이 많았다. 두메산골에 살때, 남매들 7~8명이 있는 집은 보통이었다. 10명 이상도 적지 않았다. 그땐 왠지 형제들이 많다는 게 창피하던 시절이었다. 시커먼 머슴애부터 갓난아이까지 흥부네 아이들처럼 줄줄이 사탕인걸 부끄러워했다. 좁디좁은 골방에서 북적대며 사는 모습과 형제들과 매끼니 벌일 수 밖에 없는 ‘숟가락 싸움’의 현장을 들킨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없는 시절엔 그랬다. 많은 형제는 최소한 그때는 자랑은 아니었다. 중소도시에 이사했을때도 그랬다. 골목엔 자치기하는 개구쟁이로 넘쳤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로 북적였다. 한 반이 60명을 넘어 70명까지 불어났다. 아예 오전반(1부) 오후반(2부)으로 나눠 운영하는 학교가 생길 정도였다. 정말 숫자로만 친다면 아이들 세상이었다.

독약의 구호,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때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에 반감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 그땐 산아제한이 선(善)인 줄 알았다. 훗날 독약으로 돌아올지 그 누가 알 수 있었을까.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오늘, 동네 떠나갈 듯이 시끄럽게 했던 아이 울음소리는 사라졌다. 10남매, 12남매라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됐다. 다섯쌍둥이, 네쌍둥이, 심지어 세쌍둥이가 탄생하는 일은 큰 뉴스가 되는 세상이 됐다.

합계출산율 0.7명이란다. 아, 저출산 문제. 심각해도 너무 심각하다.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9월 인구동향’에서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나왔다. 1년 전보다 0.10명 줄었다. 역대 최저치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다. 올해 상반기 합계출산율은 0.76명이었는데, 이보다 한참 더 떨어진 것이다.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가 줄어드는 흐름을 감안하면 4분기엔 0.6명대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출산은 지금도 골치아픈 문제인데, 이 정도면 벼랑끝에 몰려도 한참 몰렸다.

3분기에 태어난 아이는 총 5만6794명이다.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11.5%(7381명) 줄었다.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1년 이후 3분기 기준 역대 가장 적은 출생아 수다. 출생아 급감이 예상되는 4분기까지 합쳐 올해 출생아 수는 25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 수치다. 굳이 전쟁후 ‘다출산’에 전념할 수 밖에 없던 사회적 분위기가 합쳐졌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겠다. 전쟁 후유증이 약간 걷히고 산업화에 돌입한 1970년의 연간 출생아 숫자는 100만명대(100만6645명)였다. 그것이 1990년 60만명대(64만9738명)로 줄었고, 2010년에는 40만명대(47만171명)로 감소했다. 2020년엔 사상 처음으로 20만명대(27만2337명)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약 25만명 정도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50여년(1970~2023년) 동안 들렸던 아이울음 소리가 4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말이 4분의 1이지, 50년전에 비해 한해 75만명 정도가 덜 태어난다는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니다. 수렁에 빠져도 너무 깊은 수렁에 빠졌다. 고령화와 겹쳐진 농촌소멸론, 지방소멸론 얘기가 안나올 수 없는 이유다.

당연히 줄어드는 혼인율이 저출산의 1차 주범이다. 3분기 혼인건수(4만1706건)는 지난해 같은기간(4만5413건)보다 3707건(8.2%) 줄었다. 감소 폭은 7월(5.3% 감소), 8월(7.0% 감소), 9월(12.3% 감소) 3개월간 커져만 간다.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는 뜻이다. 혼인율이 줄어드니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이것만은 아니다. 요즘엔 혼인율이 는다고 해서 출산율이 꼭 높아지는 건 아니란다. “예전엔 혼인율이 높아지면 1년후 출산율이 증가하는게 공식이었는데, 요즘엔 꼭 그렇지도 않다”(통계청 관계자)는 것이다. 왜? 결혼은 하되, 아이를 낳지 않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는 이렇듯 우리사회에 일상화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문체부와 함께 내놓은 ‘저출산 인식조사’(10월 19∼79세 국민 1200명 대상 조사)는 시시하는 바가 크다. 출산가능 연령의 만49세 이하 응답자에 ‘자녀계획이 있나’라고 물었는데, 49.0%가 “없다”고 했다. 결혼해도 아이를 안낳겠다는 이가 2명 중 1명인 셈인데, 충격적이다. 출산을 기피하는 까닭은 연령별로 달랐다. 20대는 ‘자녀없이 생활하는 게 여유있고 편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30대는 ‘경제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40대는 ‘양육 및 교육부담 때문’이라고 했다. 표현만 다를뿐, 크게 보면 이유는 똑같다. 미래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 자녀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먹고살 걱정에 아이 낳을수 없다는데

그들의 아픔이 느껴져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먹고 살기 힘들고, 앞으로도 먹고살 걱정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데 기성세대가 뭐라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 딩크(Double income, No kids)족이 사회적 화두에 올랐을때, 어른들은 종종 말했다. “그래도 애는 낳아야지. 나중에 후회해. 어떡하려구 그래?”. 요즘 이렇게 말했다간, 꼰대 소리 듣는 건 고사하고 앞으로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기성세대는 그만큼 그들의 입장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나날이 추락하는 출산율, 그 숫자를 세면서 저출산 경고음만 날리는 것은 한가한 일이다. 적게 잡아도 3000만~4000만원에 달한다는 결혼비용부터 주택구입까지의 험난한 과정, 여기에 자녀라도 생기면 감당해야 할 엄청난 보육비와 사교육비…. 당사자 입장에서 서서 그것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줄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때다. 정부는 이미 부모급여 지급, 돌봄 서비스 확대, 신혼부부 주거지원 등 각종 저출산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개선되기는 커녕 더 심각해져가는 저출산 위기를 볼때 그 효과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많은 이들은 결혼과 출산에 관한한 파격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상상을 초월한 혜택을 줌으로써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지만, 그렇다면 ‘상상초월의 혜택’이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걸까. 정부 정책의 최우선 리스트에 저출산 극복으로 올려놓은 것도 한 방편이다. 가정과 일을 양립하게 해줄 직장내에서의 출산 관련 복지의 실질적인 극대화, 젊은층 트랜드에 발맞춘 기존 결혼제도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 등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출산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인 따뜻한 시선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도 저출산이 단박에 다출산으로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손을 놓을 수는 없다. 미래세대가 없으면 기성세대 삶의 의미도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누군가 2023년판 인간시장을 내놓으려면 첫문장은 반드시 바꿔야 할 것 같다. “기찻길 옆에는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에서 “기찻길 옆에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로. 초장부터 밋밋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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