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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이 된 5년전 금융위의 걱정…새 금융위원장의 조건[홍길용의 화식열전]
눈덩이 민간부채·증권사의 과도한 탐욕
부동산PF·해외부동산 부실, ELS사태 등
5년 전 금융위 김용범·손병두 등 예견해
금융시스템의 문제, 해결 더이상 못늦춰
금융수장 전문성·경험 갖춘 인물이 돼야

눈덩이 민간부채, 증권사의 과도한 탐욕,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해외부동산펀드와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

요즘 금융시스템의 고민거리다. 총선을 앞두고 쉬쉬하고 있지만 예후가 좋지 않다. 이미 곪아 터졌거나 조만간 고름이 나올 곳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 수를 예견했던 곳이 있다. 행정고시 최고 성적을 자랑하는 인재들로 채워진 금융위원회다.

2019년 1월 금융위는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이란 자료를 내놓는다. ‘경제관련 관계기관 합동’으로 표기됐지만 주도한 것은 당시 김용범 부위원장과 손병두 사무처장(현재 한국거래소 이사장)이었다.

이 보고서는 개별 금융회사 차원의 건전성 규제와 감독으로는 비은행권 위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별개로 시장 충격이 발생하면 금융시스템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될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대한 경계다.

쉽게 말해 저금리 상황에서 각 금융회사들이 나름 돈 벌이에 열심이지만, 금리가 올라 시장 상황이 바뀌면 이런 활동들이 오히려 시장에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보면 구구절절 옳다. 그때부터 대비를 했다면 지금 걱정거리는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사모펀드 사태와 치솟는 집 값을 잡을 대책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위원장들은 마지막 고승범 위원장을 제외하면 모두 실무 경력이 국제금융 부문에 치우친 인물들이었다. 그렇게 금융위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금융위원장이 바뀔 모양이다. 마침 2024년은 우리 금융시스템에 아주 중요한 한해다. 늘어난 가계 부채, 자영업자 부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증권사들의 왜곡된 사업 관행도 뜯어고쳐야 한다. 부동산 PF 해결책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해외부동산 펀드나 ELS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투자시대’에 걸맞게 자본시장의 공정한 룰을 손 보는 작업도 늦출 수 없다.

모두 어쩌다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오랜 사업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다. 저금리에서 고금리로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판(paradigm)도 바뀌었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가계와 기업부채 규모만 해도 둘 모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 아래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부채축소(deleveraging)가 필요한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수반된다.

우리나라는 중앙은행이 아닌 정부(금융위)가 은행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실세(實勢)인 금융감독원장이 있다지만 금융시스템의 최고 관리책임자는 역시 금융위원장이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전문성이다. 가급적 최근 이런 구조적 문제에 깊이 고민해 본 이가 맡아야 할 때다.

일례로 우리 증시의 고민인 공매도 문제 해결도 자본시장법을 다루는 금융위원장의 몫인데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간 금융위원장 가운데 증시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인지 자본시장법은 2016년 공매도 금지를 ‘거래소의 요청’이 있어야만 가능하도록 개정됐다. 결국 최근 이뤄진 공매도 금지도 형식적으로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요청으로 이뤄진 셈이다.

명의는 치료에 앞서 정확한 진단을 한다. 진단을 잘못하면 치료도 불가능하다. 어설픈 진단은 오히려 환자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 후한 말 명의(名醫) 화타(華陀)는 독화살을 맞은 관우(關羽)와 만성 두통을 앓고 있던 조조(曹操)에게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외과 수술법을 제시했다. 무시무시한 치료법에도 화타의 진단을 믿은 관우는 살았지만 조조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지금은 금융시스템에 드러난 문제에 단순히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근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과감한 수술법을 제시할 금융위원장이 필요하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새 금융위원장에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걱정보다는 기대를 높이는 인선이다. 5년 전부터 오늘을 걱정했던 인물이고 금융시스템은 물론 시장에 대한 이해도 충분한 인물이라는 데 금융권 안팎의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다만 인사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적임자 임명을 간절히 바래본다.

2019년 1월 금융위원회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 中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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