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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8년만의 해후’

키롬 살로히딘 씨가 주한타지키스탄 대사가 되어 한국에 금의환향했다. 한국을 떠난 지 8년 만의 일이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물어 나를 찾았단다. 나는 그의 한국 부임 소식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며칠 전에서야 비로소 타지키스탄 출신의 아지즈 씨로부터 연락을 받아 알게 되어 그의 주선으로 우리는 서울에서 다시 만나 격한 포옹과 옛정을 나눴다.

옛 추억을 떠올리고자 시계 바늘을 그 당시로 되돌려 봤다. 2015년 1월 어느 날, 멀고 먼 이역만리 파미르고원의 나라,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서 유학 온 아지즈 학생이 나를 찾아와서 주한타지키스탄 상주대사관을 개설하는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누나는 타지키스탄 대통령실에서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의 측근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자기 누나로부터 도와 줄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우리는 한국 땅을 처음 밟는 외국 신사에게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꽃다발을 건네며 영접했다.

당장 그가 머물 거처와 보안 유지가 가능한 업무 공간 마련이 시급했다. 내가 쓰고 있는 오피스텔을 그를 위한 업무 공간으로 내주었다. 그래서 내 사무실이 주한타지키스탄 임시대사관이란 ‘역사적 역할’을 떠맡게 된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외교부를 방문하는 등 상주대사관 설치를 위한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우리 외교부로부터 개설 인가증을 받아내는 일을 서둘러야 했다. 나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던 당시의 국정원장이 막후에서 도움을 준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대사관 개설 인가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큰 일들은 대충 마무리 되었나싶어서 한 숨을 돌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라흐몬 대통령이 4월에 대구에서 열리는 제7차 세계물포럼대회에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방한 기간 중에 한국의 국회의장과 면담할 수 있도록 일정을 만들어 놓으라는 본국으로부터의 긴급 훈령이 떨어졌다. 난감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국가 서열 2위인 우리 국회의장이 외국 정상과 면담할 때는 적어도 1년 전에 일정을 잡아놓기 때문이었다. 타지키스탄 본국정부에서는 다른 외교 루트를 통해서도 이를 추진했으나 우리 국회 국제관계 담당 부서 측에서 의전 관례상의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한 모양이었다.

살로히딘 씨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었다.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의 측근인 나의 벗이 이런 사정을 전해 듣고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주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살로히딘 씨와 함께 정 의장을 찾아가서 요청하자 정 의장께서 즉석에서 라흐몬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을 잡아주었다. 타지키스탄에 대한 따스한 배려가 담긴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밖에 항공대학교와 타지키스탄기술대학과의 자매결연 체결, 라흐몬 대통령이 참석한 대사관 개소식 행사 등...4개월에 걸친 주한타지키스탄 상주대사관 개설 작업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임무를 마친 살로히딘 씨는 본국으로 떠났고, 나는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타지키스탄 민족은 원래 이란 페르시아계에 뿌리를 둔 소그드족이다. 이웃 우즈베키스탄 남부 일대와 타지키스탄 남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 사람들도 타직 민족이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문물을 이어주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장사의 귀재’ 실크로드 상인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 지역은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가 거쳐 간 역사적 사연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타지키스탄 인구는 약 1천만 명이지만 국경을 뛰어넘는 민족경제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타지키스탄은 훨씬 넓고 많은 생활·경제권을 품고 있어 그만큼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최근 글로벌화 모순에 대한 반발 확산과 경제·안보 블록화 현상은 우리 경제에 큰 위협 요소로 다가오고 있다. 해외경제영토의 축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영토 개척이 절실하다. 타지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유라시아 지역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살로히딘 대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한국과 타지키스탄 양국은 내실 있는 협력 관계가 구축되어 있었다. 양국기업 합작으로 대규모 봉재공장이 완공되었고 내년부터는 E9 노동자 비자가 타지키스탄에 적용되어 타지키스탄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일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양국 간의 항공 직항로 개설도 이뤄질 전망이다. 한편 우리가 앞으로 관심을 가질 분야는 타지키스탄의 풍부한 지하자원 채굴사업과 도로·철도망 건설, 수력발전소 건설 등 인프라구축 사업이다. 실크로드 역사 탐방과 파미르고원 오지 탐험을 테마로 하는 여행사업도 유망한 사업 분야 가운데 하나다.

살로히딘 대사는 ‘어려웠을 때 친구’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주었다. 나는 그와 예전처럼 의기투합해서 한국과 타지키스탄 양국 간의 ‘작은 역사’를 다시금 써 나갈 수 있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우리가 함께 일을 하다가 막힐 때면 나누던 말이 있었다. ‘인샬라!’

장준영 헤럴드 고문 전 항공대 초빙교수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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