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 반사 면적 최소화로 설계
동체 전체의 85% 티타늄으로 제작
‘마하3.2’ 당시 가장 빠른 유인항공기
눈 덮인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비행하는 SR-71B 블랙버드. SR-71B는 SR-71의 훈련기 버전이다. [미공군] |
SR-71 블랙버드의 개발은 냉전이 시작될 무렵에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1949년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높은 고도에서 안심하고 정찰할 수 있는 U-2 정찰기를 개발했습니다.
1955년 개발을 완료한 U-2 정찰기는 2만m가 넘는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였습니다. 소련의 레이더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정찰기를 만든 것이었죠.
당시 미국은 U-2 정찰기가 소련의 레이더가 탐지하는 높이보다 최소 1500m는 더 높이 비행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1956년 U-2 정찰기는 소련지역 상공을 정찰하는 첫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U-2 정찰기는 많은 사진을 촬영해서 안전하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U-2의 레이더파기록장치에는 소련의 대공감시레이더가 기체를 추적하고 있다는 것이 함께 기록돼 있었죠. 미국의 판단이 틀렸던 겁니다.
1957년, 소련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다급해졌습니다. 언제라도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이 자국 영토에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죠. 1957년 후반, 미국 중앙정보국 CIA는 록히드에 탐지가 불가능한 정찰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아크엔젤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당연히 켈리 존슨이 이끄는 스컹크웍스가 맡았죠.
아크엔젤 프로젝트는 1958년 2분기에 시작됐습니다. 스컹크 웍스는 10개월 만에 무려 11개의 모델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 마하3.2에 도달할 수 있는 열 번째 디자인을 가지고 1959년 3월 CIA를 찾아갔지만 CIA 눈에는 차지 않았죠. 레이더 반사면적이 너무 넓었기 때문입니다. CIA는 레이더 반사면적을 90% 줄이라고 요구했고 캘리 존슨의 팀은 불과 두 달 만에 12번째 디자인, A-12의 설계도를 들고 갔습니다.
1960년 2월 11일, 미 CIA는 스컹크웍스와 정찰기 12대 제작 계약을 맺습니다. 9600만달러, 요즘 가치로는 약 7억5800만달러 규모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조500억원입니다.
계약을 맺고 이제 시제기를 제작하려할 때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960년 5월 1일, 파키스탄에서 이륙해 소련 영토 한 가운데서 정찰활동을 하던 U-2 정찰기가 SA-2(S-75/V750VN)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난감했습니다. 바로 전년도인 1959년 9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니키타 후르시초프 소련 공산당 제1비서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양국의 관계개선을 논의했었고, 불과 2주 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죠.
처음에 미국은 미 항공우주국 NASA가 운영하는 자산이라고 둘러댔지만 그 핑계가 먹힐 리 없었습니다. 결국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파워즈는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3년 징역형과 7년 중노동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때문에 파리 정상회담은 깨졌고 미 정보당국은 조급해졌습니다.
A-12는 1962년 4월 25일 네바다주 그룸레이크에서 처음 비행했습니다.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한 YF-12 요격기 프로토타입 3대와 드론 캐리어 2대 등 모두 13대가 제작됐고 1966년까지 베트남과 북한 상공 등에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때까지 이 비행기의 존재는 극비사항이었죠. SR-71의 정체가 공개된 것은 순전히 국내 정치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1964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가 민주당 대통령인 린든 존슨 대통령에 대해 새로운 무기 게발에서 소련에 뒤쳐졌다는 이른바 안보 무능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해 7월 존슨 대통령은 이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이 정찰기의 존재를 공개하기로 했죠.
이름 공개 당시 원래 명칭이었던 RS-71을 존슨 대통령이 잘 못 읽어서 SR-71이 됐다거나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전략정찰을 뜻하는 SR이라는 명칭을 선호했다는 등 이름 발표를 둘러싼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정체가 공개된 지 1년 반 뒤인 1966년 1월 미공군은 블랙버드를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정찰기였는지 이쯤에서 제원을 살펴보죠. 단좌기였던 A-12와 달리 SR-71은 앞뒤로 2명의 승무원이 탑승했습니다. 앞좌석에서는 항공기를 조종했고 뒷좌석에서는 각종 센서와 레이더로 정찰임무를 수행했습니다.
SR-71은 레이더 반사면적(RCS)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최초의 스텔스 설계를 시도한 정찰기입니다. 길이 32.74m, 날개폭 16.94m, 높이 5.64m에 날개면적이 170㎡인 거대한 동체가 정작 레이더에서는 10㎡ 크기로 보였죠.
RCS를 줄이기 위해 동체 아래쪽을 완만한 유선형으로 설계하고 스텔스도료까지 칠했습니다. SR-71의 또 다른 강점은 빠른 속도에 있습니다. 1976년에 세운 ‘가장 빠른 공기흡입 유인항공기’라는 타이틀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을 정도죠.
이렇게 빠른 속도를 구현하기 위해 갖가지 첨단기술과 소재가 적용됐습니다. 고속에서 발생하는 열에 견디기 위해 동체 전체의 85%를 티타늄으로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5%는 복합소재를 사용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 티타늄을 적이자 정찰의 대상인 소련에서 구해왔다는 것이죠.
고온을 견디기 위한 기술은 또 있습니다. 날개 표면을 주름지게 제작한 것이었죠. 열에 의해 금속이 팽창하는 것을 감안한 조치였습니다. 같은 이유에서 동체도 지상에 있을 때는 느슨하게 맞도록 제작했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별도의 연료탱크를 만들지 않고 동체 자체가 하나의 연료탱크 역할을 했습니다. 때문에 동체에 연료를 가득 넣고 주기장에 계류할 때는 눈물처럼 연료를 바닥에 흘리기도 했습니다. 또 일반 항공유보다 인화점이 높고 열 안정성이 좋은 JP-7 제트연료를 별도로 개발해야 했습니다.
착륙할 때조차 시속 310㎞의 빠른 속도였기에 알루미늄을 섞은 타이어를 질소로 팽창시켜 사용했고 하나에 2300달러인 이 타이어는 20번 사용하기 전에 교체해줘야 했습니다.
엔진은 프랫엔 휘트니가 제작한 3만2500파운드 추력의 J58엔진 2기를 장착했습니다. 블랙버드의 일반적인 순항속도인 마하 3.2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이 엔진은 공기흡입구에 원뿔모양의 움직이는 스파이크를 달아서 고속과 저속에서 다른 양의 공기가 흡입되도록 했습니다.
블랙버드는 이륙 직후 공중급유기로 연료를 재충전합니다. 바닥에 연료를 질질 흘리니까 그런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비싼 타이어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일부 연료만 적재한 상태로 이륙하는데 고속에서 효율이 좋은 엔진이라 이륙할 때의 저속에서는 연비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듯이 연료가 일반 항공기와 다르기 때문에 JP-7을 저장해 급유해줄 수 있는 KC-135Q라는 개조된 급유기가 필요했습니다. GPS가 없던 시절에 개발된 블랙버드는 마하3의 속도에서도 300m 이내의 편차를 낼 정도로 정교한 천체관성항법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정찰기라는 목적에 맞게 광학과 적외선 촬영장비는 물론 측면감시 공중레이더와 전자정보수집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조종사들은 원활한 산소 공급과 고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U-2 정찰기 조종사와 마찬가지로 특별 제작된 가압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SR-71 블랙버드는 모두 32대가 제작됐고 이중 12대가 사고로 손실됐습니다. 좀 위안이 되는 것은 적의 공격을 받아서 추락한 기체는 하나도 없다는 것 정도네요.
설명을 전체적으로 해놓고 보니 빠르고 높이 날 수 있다는 것 빼고는 좋은 게 하나도 없는 비행기 같습니다. 세척을 하려면 증류수가 필요했고 한 번 비행하고 나면 평균 정비 시간이 일주일 정도 걸렸다는 단점까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미 공군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요? 냉전이 끝나기도 전인 1989년에 인공위성 등 진화하는 다른 정찰 방법이 있는 마당에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항공기를 더 이상 운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블랙버드를 퇴역시켰습니다.
하지만 1993년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과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 움직임 등이 감지되자 3대의 SR-71을 복귀시켰고 실시간 데이터링크 장비를 부착해 5년간 더 사용하다가 1998년 최종 퇴역시켰습니다.
SR-71의 자리는 SR-72라는 무인기로 대체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 록히드마틴이 블랙버드의 후속기종으로 미 공군에 제안한 감시정찰 초음속 무인기로 듀얼모드 램제트 엔진을 달고 저속에서는 마하3, 고속에서는 마하6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게 개발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록히드마틴은 초음속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SR-72의 프로토타입을 2025년부터 비행시험을 하고 2030년대에 전력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블랙버드의 아들이 공개될 날이 이제 멀지 않았네요.
오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