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안다(앙골라)=한지숙 기자】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수도 루안다의 ‘꽈뚜르 데 페베레루(2월4일ㆍ앙골라 독립투쟁 기념일 의미)’ 공항에서 비즈니스 중심가인 무탐파까지 20㎞를 승용차로 가는 데 무려 3시간이 걸린다. 서울에서 20분이면 끝낼 관공서 업무는 6개월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사하라 사막 이남 블랙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와 함께 최대 석유 대국 앙골라. 공공영역의 비효율성은 인내심의 한계에 이르게 하는데도 이 나라 석유부, 투자진흥청, 국영석유회사에는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24일 앙골라 투자진흥청(ANIP) 본사 앞에서 만난 에디슨인터내셔널의 앙골라 코디네이터 로마 쳉씨는 “앙골라에서 사업하려면 1시간은 기본적으로 기다려야 하고, 반드시 포르투갈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귀뜸했다. 중국계인 그는 망간과 마그네슘 수입 관련 업무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코트라 관계자는 “시간이 돈인 줄 모르며, 원조를 반기지 않는 점 등은 아프리카 자원 부국들의 특징”이라고 했다.
▶경제 회복과 함께 다시 뜨는 앙골라 = 앙골라 콧대가 이렇게 높은 이유는 물론 석유 자원 때문이다. 앙골라는 석유 수출 세계 10위국으로 지난해 오일머니만 30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앙골라는 석유 생산량을 2006년 기준 150만 배럴에서 올해 200만 배럴까지 늘릴 계획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앙골라 원유 매장량은 125억배럴로 추정되지만 앙골라 측은 130억~190억배럴까지 보고 있다. 석유산업은 이제 시작단계다. 특히 앙골라 정부는 콩고 국경 지대의 카빈다 지역과 심해 지역 등 향후 자원 분쟁의 소지가 있는 지역의 석유를 먼저 개발하는 영리한 방법을 쓰고 있다. 국영석유회사 소낭골은 2007년에 10개광구(해상 7개, 육상3개)를 개발한다고 발표하고 48개사를 사전적격심사(PQ)를 통과시킨 뒤 3년여간 공식 입찰을 미루고 있다. 외국 기업들이 서로 더 많은 투자 보따리를 풀어놓겠다고 경쟁하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거대 유전을 노리고 쉐브론, 토탈, BP, 엑손모빌 등 세계적인 주요 석유 메이저들이 앙골라에서 영토를 넓히는 중이다. 미국 쉐브론은 루안다 해안변에 텍사스 본사 건물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지사 건물을 최근 세웠다. 본사 파견 직원과 현지 채용을 포함해 1500명이 근무한다. 프랑스 토탈도 앙골라 지사 인원을 1000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쉐브론과 토탈은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낭골과 함께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12년에 완공 예정인 이 프로젝트에는 90억달러가 투자될 예정이다.
소낭골은 또 일산 20만 배럴 규모의 로비토 정유시설 프로젝트를 2013년 완공을 목표로 올해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이미 미국 엔지니어링업체 KBR이 공사 설계에 들어갔다. 애초 이 프로젝트는 중국 국영석유회사 시노펙이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경제성을 이유로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앙골라는 제2 정유시설인 루비토 정유시설이 완공되면 현재 70%에 이르는 석유제품 수입 비중을 크게 낮추고, 국내 석유제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BP는 올해 블록31 광구에서 생산하기 시작해 빠르면 내년 말 블록 15 광구에서도 생산을 시작한다.
2조6000억원 규모의 FPSO를 수주한 대우조선해양은 앙골라 조선소 지분 30%를 인수한 뒤 컨트리 마케팅 강화 차원에서 현지 근무 인원을 15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우리 기업을 제치고 시멘트 사업권을 따냈던 일본 소지츠 상사는 ‘샤인(Shine) 2011’ 비전에 따라 앙골라에서 LNG 등 에너지와 광물 자원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앙골라에서 10여년간 근무한 마사 마츠에(54) 소지츠 앙골라 지사장은 “앙골라 정부가 국가 경제에서 석유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낮추려고 경공업, 발전소 건설 등 산업을 세분화해 개발하려 하고 있다”며 “시장 잠재성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그는 “소지츠는 1단계로 LNG 등 자원 상품 무역을 늘리고 2단계로 발전소 건설 등 앙골라 정부의 현대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자원 개발 산업은 도로, 건설, 운수 등 인프라 산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고, 경공업과 식품업 분야 투자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코카콜라 생산 공장에 이어 루안다에는 네슬레,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도 생산공장도 들어설 예정이다.
▶‘아미고(동무)’의 나라 중국의 명암 = 앙골라인들은 동양인을 보면 “시네시(Chinesi)”라고 외친다. 포르투갈어로 중국인인 이 말에는 우리말의 ‘되놈’ 처럼 멸시와 조롱의 뜻이 담겨 있다.
중국은 1975년 포르투갈 독립 이후 앙골라 국가 재건에 든든한 동반자였다. 110억달러 차관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로써 앙골라는 중국 전체 원유 수입에서 19%를 차지하는 최대 원유 공급처가 됐다. 정부 간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도로, 철도, 100만호 주택사업 등은 중국이 거의 싹쓸이했다. 중국은 40% 낮은 입찰가로 대부분의 건설 프로젝트를 장악했다. 주앙골라 중국 대사관에 따르면 건설 노동자 등 앙골라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대락 30만명선. 그러나 불법체류자 등 실제 거주민은 50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게 현지 한국 기업인들의 얘기다.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은행, 중국 음식점, 주유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진출 공세에 한국 기업인 들의 시름도 깊어가고 있다. 초창기 건설사업에서 재미를 봤던 남광토건 등 우리 기업들은 석유가격 급락으로 경제 거품이 가신 2009년부터 주재인원 수를 줄여가고 있다.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중국이 건설하는 주택과 빌딩에는 중국산 가전제품들이 들어갈텐데, 앞으로 가전 등 소매 시장도 중국산에 점령당할까 우려된다”며 “한국 정부가 앙골라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말했다.
시네시로 대표되는 반중(反中) 감정은 앙골라인의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의식을 더욱 깊게 한다. 중국이 지은 국립병원 건물이 지은 지 2년만인 2009년에 외벽에 금이 가고 건물 전체가 기울어 환자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지면서 더 심해졌다. 각종 프로젝트에 현지인을 채용하지 않고 운남성 등에서 저급한 노동자를 데려 와 급행으로 완성시킨 부작용이다.
앙골라 정부는 이에따라 이런 중국에 대해 거리두기를 시작한 듯하다. 다이아몬드 채광 프로젝트에 일본, 스페인, 러시아, 브라질 등 4개국과 협력하면서 중국을 배제시켰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마츠에 지사장은 “앙골라 정부가 한 국가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는 한국과 일본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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