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교민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교민의 차량 한대가 폭발하는 등 피해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집트 주말 유혈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집권 당사, 경찰서, 박물관 등은 방화와 약탈의 표적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교도소 4곳에서는 수감자 5000여명이 탈출해 카이로 시내는 말그대로 아비규환 상태다. 주말 동안 수만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100여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0여명이 부상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교민들도 하루하루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2년째 카이로에 살고 있는 천재은(29) 씨는 “밖에서는 총성이 들리고 곳곳에 검은 연기들이 자욱하다”며 “집 안에만 머문채 대사관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의 외국인 밀집지역인 마디에 살고 있는 천 씨는 자신의 집이 시내와 제법 거리가 있는데도 집앞 거리까지 탱크와 장갑차가 들어와 있다며 “건물 약탈자들이 많아 동네 주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고 교대로 불침번을 서고 있다”고 급박한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나 터키 등 다른 나라 정부는 벌써 전세기를 투입해 자국민 탈출시켰는데 우리 정부는 전세기 검토 등 교민들 사이에서 말만 무성할 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해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조성택(31) 씨는 “어제(30일) 대사관에서 전화가 와 영문이름, 여권번호, 생년월일 등을 알아 갔다”며 “교민들은 이제 정부 전세기가 뜨나 보다고 안도했는데 다시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국 친척이나 지인에게 부탁해 티켓을 예약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아 교민들 사이에서는 혼선만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1일 아침부터 대사관과 대한항공이 조율해 어떻게 교민을 데리고 갈건지, 항공료를 어떻게 할 건지 등 조율을 할 것이라고 들었다”며 “하루 빨리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교민은 “대한항공이 2월 1일 이집트 운항을 철수하기로 했는데 한국 정부측의 요청으로 목요일(3일)에 다시 뜬다는 말이 있다”며 “비행기 티켓을 한국에서 예약해 예약번호를 가지고 공항으로 직접 가야 한다고 들어 한국 친척들에게 알아봐 달라고 전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는 교민들의 공항 인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는데 우리 정부는 이제서야 교민 파악하고 되레 주재원들에 이집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국이 어떻게 될 건지 묻고 있다”며 “전세기 조율도 제대로 안되고 늑장대처로 불안감만 더 키우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교민들의 먹을거리도 문제다. 천 씨는 “그동안 사다 둔 것으로 몇 일은 버틸 수 있는데 한국으로 가지도 못하고 사태가 장기화 되면 당장 먹을 것부터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져 아침에 잠깐 밖에 나갈 수는 있지만 대형마트는 벌써 다 털리거나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몇시간 줄을 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