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열강들의 패권 쟁탈전 속에서 강탈당했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뼈아픈 역사의 상징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마침내 돌아온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한 뒤 무려 145년만이자, 1991년 반환협상 개시 이후 20년만이다.
외규장각 도서의 아픈 과거는 강탈은 물론 발견부터 반환까지 계속됐다. 1866년까지 강화도 외규장각에 있던 이들 297권 책자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빼앗긴 소중한 문화 유산의 존재조차 한 세기가 넘도록 알지 못했다.
정부간 반환 협상이 시작된 것은 그후 16년이 지난 1991년이었다. 부족한 문화재 관리 능력과, 관심 부족, 미약한 국력으로 돌려달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협상도 쉽지만은 않았다. 협상 시작 당시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계획 중이던 우리나라는 프랑스산 고속철 ‘떼제베’ 도입을 미끼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요구했고,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프랑수와 미테랑은 1993년 이들 도서 중 하나인 휘경원 원소도감의궤를 ‘상호교류와 대여’ 방식으로 돌려주며 기대감을 높혔다.
하지만 이후 20년 동안 돌아온 것은 이 책 단 한 권 뿐이였다. 우리 정부는 ‘영구 대여’ 방식 반환을 추진했지만, 세계 각국에서 약탈한 문화재가 초대형 박물관 3~4개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인 프랑스는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미온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미테랑 대통령의 반환 약속에 집단 사표까지 내던지며 온몸으로 저항했던 그들은, 정부간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인 지난해 말에도 “사르코지 대통령의 서울행 전용기를 막겠다”며 문화 제국주의의 노골적인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297권 도서 모두가 제자리에 돌아오게 된 것은 한국의 높아진 위상 때문이다. 실제 프랑스 정부가 반환에 적극 나선 것은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가 계기였다. 차기 개최국인 프랑스는 의장국인 우리나라와 원만한 관계가 필요했고, 외규장각 도서 문제 해결이 필수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협상은 우리 정부가 ‘영구 대여’ 대신 5년 갱신 형식의 ‘일반 대여’ 방식을 수용하는 융통성을 발휘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마침내 파리 현지시간 7일 오후, 박흥신 주프랑스 대사와 폴 장 오르띠 프랑스 외교부 아시아ㆍ태평양 국장은 정부 간 협의문에 최종 서명, 오는 5월말까지 모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최정호 기자@blankpress> choij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