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음성·설문 등으로 체질진단 기술 개발
2009년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
화장품·생리대·치매방지 신발 등
한의학 접목 신약·생활용품 제작도 활기
“환경오염·스트레스 등 현대 질병 속출
한의학이 인류 건강한 삶 선도할 것”
“한의학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친환경적 의학’입니다. 한의학의 세계화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의 꿈이기도 합니다.”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한의학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이 그 꿈을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 세계화를 목표로 지난 1994년 설립된 전통의학 분야 국내 유일의 국가거점연구기관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기관으로 200여명의 한의사 등 전문인력이 포진돼 있다. 김 원장은 “침ㆍ뜸에 대한 표준화 연구, 경락ㆍ경혈의 과학적 연구, 체질의학 개발, 한약처방 유효성 과학적 근거 확보 연구, 각종 치료법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한의학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이다. 많은 과학자가 한의학의 효과를 인정하고 있지만,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의문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전 세계 78개국에서 침술을 사용할 만큼 한의학이 널리 퍼져 있지만 어디에 침을 놓을지, 침의 규격은 어떻게 돼야 할지 혼란이 생기고 있다”며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이런 의문을 현대과학으로 증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회용 침의 국가표준 규격’을 개발, 보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체질 역시 과학적으로 재정비했다. 최근에 개발한 안면ㆍ음성ㆍ설문 연동형 체질진단 기술이 대표적이다. 얼굴을 촬영하면 얼굴의 주요 특징 정보를 자동으로 분석, 체질을 판별하며, 음성으로 144개 변수를 추출, 이를 기반으로 체질을 구분한다. 그 밖에 식습관, 생리활동 등을 설문조사해 연령별로 체질 정보를 제공한다. 즉, 지금까지 체질을 알고 싶으면 한의사의 입에만 의존했지만 이젠 얼굴 촬영, 음성 분석, 설문조사만으로도 객관적으로 체질진단을 받을 수 있다. 김 원장은 “환자 스스로 체질을 진단하고 체질에 맞는 생활 습관을 제공받는 한의학 기반의 ‘셀프 케어(self-care)’ 시스템”이라며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도 한의학 의료기기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엔 한국의 대표적인 한의학서적 ‘동의보감’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지난 2009년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추진사업단은 17세기 허준 선생이 편찬한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의학서적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건 최초다. 김 원장은 “유네스코도 한의학의 우수성을 인정했다는 의미”라며 “한국 한의학의 정통성과 독자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원장이 심혈을 기울이는 과제는 신약개발이나 생활용품을 통한 한의학의 변신이다. 한약재를 활용한 천연물 신약개발은 이미 바이오산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김 원장은 “한약재 기원식물을 중심으로 기원이 오칭되거나 혼용되지 않도록 한약재 기원식물의 정보를 수집해 기원식물 확증표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한약재의 표준화와 함께 한방신약개발로 한국이 세계의약시장을 선도하는 데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약을 이용한 당뇨합병증 치료제도 개발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한약 소재로부터 개발된 치료제다. 김 원장은 “당뇨합병증 치료제 시장이 2018년까지 55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릴리프밴드처럼 한의학을 접목한 생활용품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한의학과 접목한 제품이 한방 화장품, 한방 생리대 등 한방효과를 기대한 제품이었다면, 이젠 침술이나 경혈 등을 활용한 제품군까지 확대되는 중이다. 지난해 7월부터 아웃도어 전문업체 트렉스타 등과 함께 연구 중인 치매 방지 신발이 대표적인 예다. 신발에서 경혈을 자극해 뇌파의 속도를 향상시키고 치매를 방지할 수 있으리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2년간 개발을 거쳐 1차 시제품을 내놓을 계획으로, 신발을 신고 걷기만 하면 치매를 방지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한의학의 세계화를 꿈꾸는 한의학연구원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김 원장은 “환경오염이나 스트레스 등 원인불명의 현대질병이 속출하고 있는 시기에 한의학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며, “인류의 건강한 삶을 한의학이 선도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dlcw@heraldcorp.com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한의학 세계화 전문기관
3월엔 WHO협력센터 지정
일반인 대상 이론 교육도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한의학 및 한약 육성ㆍ발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자는 취지로 1994년 한국한의학연구소로 출발했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의 설립ㆍ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로 출발해 1997년 한국한의학연구원으로 승격했고, 2004년 과학기술부 산하로 소속이 변경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요 기능은 한의학 이론의 과학화 및 표준화다. 전통의학인 한의학 이론을 현대식으로 과학화하며 진단 및 치료 기술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한약 규격화 및 한약제제를 새롭게 개발하는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그 밖에 한의학 학술정보를 서비스하고 한방정책을 수립하는 데 지원하는 한편, 한의학의 국제협력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이 ‘WHO Collaborating Center(세계보건기구 협력센터ㆍWHO CC)’로 지정받기도 했다. WHO 협력센터는 WHO가 수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WHO 사무총장이 지정하는 국제 협력 네트워크다. 전통의학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10개국 19개 센터가 지정돼 있고, 중국이 7개로 가장 많으며 한국은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경희대 동서의학연구소 등과 함께 3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한국 한의학이 세계적으로 위상이 격상됐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 이를 계기로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세계 전통의학 분야 연구ㆍ개발의 거점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한의학 표준화 분야에서 경쟁상대인 중국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세계에 국내 한의학의 위상을 강화하는 작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한의학의 세계화를 꿈꾸는 한의학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갖가지 실험도구와 한약재를 활용해 한의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맨 오른쪽은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한의학을 기술한 고문헌을 보며 연구하는 모습. |
그 밖에 한의학 진단과 처방, 용어 등 전 분야의 표준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한의기술표준센터를 건립 중이며 올해 완공될 예정이다.
한의학 연구뿐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사업도 펼치고 있다. 한의과학관에선 한의학 개론과 경혈, 경락 등을 소개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중풍발병진단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중풍 발병도를 확인해보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역사박물관에선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 조선통신사문서 등 고서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