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글로벌 시장에 스마트 혁명을 선사한 것은 분명 애플의 공로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오픈 마켓(Mobile Application Open Market)이라는 생태계를 개척한 것 역시 애플의 업적이라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애플은 생태계를 함께 공유하고 가꿀 경쟁사를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삼성전자를 고소한 애플의 소장엔 애플의 이런 플레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무역마찰’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들의 원칙에 반하는 것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애플의 두 얼굴이다.
이런 애플의 독선적이고 반경쟁적인 행위 앞에서는 해당국의 정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달 초(8일) 일본 신주쿠에 있는 애플의 일본ㆍ아시아 담당 시니어 매니저 애드리엔 바넥(adrienne Vanek)이 이례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았다. 일본에 있는 애플 임원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방통위는 애플의 아이폰4, 삼성전자의 갤럭시S 등 이용자가 많은 스마트폰 6개와 피처폰들의 통화 끊김 원인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조사는 스마트폰 통화 단절 현상의 원인이 데이터양이 늘어서인지, 스마트폰 자체의 문제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방통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애플은 "(조사 과정에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것"을 요청했다. 그것이 안 되면 "평가 결과를 아예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한 단계 수위를 높여 "다른 폰들에 비해 (아이폰의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단말기 시장은 물론 무역장벽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사실상의 ’압력’을 행사했다.
또 일주일 후에는 엔지니어들까지 보냈다. 방통위 주변에서는 아이폰 출시 이후 줄곧 고자세를 유지해 온 애플의 갑작스런 이런 태도가 아이폰4의 통화 품질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었다.
방통위 안팎에서는 "애초 실험실에서 평가하는 조사가 아니라 이용자 환경을 바꿔가면서 하는 것이어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며 "그 만큼 통화품질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들이 나왔다.
삼성전자 고소건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위법성 자체의 문제보다는 턱 밑까지 추격해 오는 경쟁사인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라며 "공정한 경쟁 행위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글로벌 원칙에 관한 한 애플은 고압적인 자세를 돌변한다. 이미 앱스토어에서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에 자사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식의 개발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유지하면서, 개발자들은 위치기반광고와 관련한 앱을 등록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앱스토어에서 청소년 보호 정책과 관련해서는 극단의 폐쇄적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3월 방통위와 애플의 만남에서도 앱스토어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지난 해 애플 본사에 제안했던 앱 스토어 선정성 협의 문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지난 해 11월에는 방통위가 주미 한국 대사관을 통해 애플 본사에 이 문제에 대해 공동 협의를 제안하는 공식 서한을 전달한 적도 있다.
애플 앱스토어는 자체적으로 음란물을 차단하고 있으나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국내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 성인 인증 절차가 없어, 청소년들도 쉽게 선정성 높은 앱을 검색하고 콘텐츠를 다운받을 수 있다.
방통위는 주미 대사관을 통해 수차례 답변을 요청했지만 애플은 5개월이 넘도록 답이 없다. 3월에도 애플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본사에 전달하겠다"는 기약할 수 없는 말 만 남기고 돌아갔다.
"모든 글로벌 사업자가 그렇지만 특히 애플의 정책에서 소비자는 물론 경쟁사, 정부까지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것 같다." 애플과 자주 접하는 방통위 관계자의 푸념이다.
<최상현 기자@dimua>puquap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