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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나가 그린 자화상 "마음다지기는 늘 어렵거늘.."
warming warming
mind warming
mind control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사과의 대상은 ‘너’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나’의 자화상이다

당시 내 머릿 속의 화두는 ‘마찰’이었다. 맞서고 상쇄하는 둘 또는 여럿의 움직임.

강해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 나설 때 무엇을 결정할 때 힘쎈 내가 올곧아 보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약자일 때의 기억을 되뇌이며 눈빛이, 입모양이, 손의 움직임이 공격적이어서 상대방이 겁을 잔뜩 집어먹게 만들만큼 무섭고 무섭게 보이길 원했다.
그 기억들이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지 오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상처를 받은 일들 보다는 얼굴 붉어지는 창피함이 불현듯 떠올라 가만히 있다가도 격하게 고개를 젓게 만드는 것들이다.

상대방의 동조를 얻기 위해 누구나 약자로 분해 이야기한다. 남보다 더 업신여김을 당했고, 남 보다 더 손해를 보았으며, 내가 당한 일은 남들보다 슬픔에서 회복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결국 대화의 끝은 휘발적이다.

요즘은 가능하면 ‘괜찮았다’라고 한다. 적당한 선에서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는것이 ‘잃지 않는’방법인 것 같아서 자주 애용하는 표현법인데 그것이 매번 쉬운 일은 아니다. 전혀 눈감아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입가에 웃음을 물고 있으려니 이마에서 볼따구니까지 불끈불끈 내려오는 신경질을 짓누를 수 없는 실정이다.


한두가지 이유를 들먹이며 잘잘못을 따지다보면 어느새 당장의 문제 보다는 훨씬 전부터 눌러담고 있던 서운함들이 궐기대회를 하고 있더란말이다.
‘미안하긴 한데 가만 둘 수가 없구나’한다. 그래도 결국엔 ‘미안합니다’한다.
의미인즉슨 ‘당신은 나의 친구가 될수도 있지만 이러이러한 일들을 떠올리게 하니 마냥 반길만한 사람은 아니군요’이다. 그러고 보니 절충도 속 편한 방법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은 적당함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적당한’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힘들게 느껴진 것이다. 언제나 지나친 애정을 주고 받는 게 익숙한 내가 혼자서 날선 방어선을 세웠을 뿐이었다.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뜨겁고 진짜인 마음으로 다가가고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도 전해졌다는 걸 느꼈음이 행복이다. 억지로 좋아하지는 말자.
다가서기 싫으면 그만 멈추고,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 점에 있어서 나는 한참 미달이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다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의도치않게 마음에 빗금을 입힌 사람이 있다면 ‘미안합니다’라고 하자. 상대방의 표정으로 읽기 전에 그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적당한 인간관계의 시작이지만 언제나 무엇의 시작은 어렵다.
그리고 그 시작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즉시 또는 속도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느린 속도로 나를 앞질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후회하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남이 문제가 아니었다. 결론은 내가 적이었다. < 글, 그림= 김혜나(작가) >




김혜나(30)는 지난 2005년 인사미술공간의 ‘열’전을 통해 데뷔했으며, 서울 청담동의 갤러리2(대표 정재호)에서 호평리에 개인전을 가진 작가다. 오는 11월에도 갤러리2에서의 5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벽화, 캔버스 페인팅 작업을 선보여온 김혜나는 작은 드로잉 작업도 즐겨 한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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