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예보·감사원·국감까지
금융기관 한 해 4~5곳서 감사
“자료만들다 1년 보낸다”자조도
감시·견제뒷전 뒷돈·청탁에 오염
일터지면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
권력은 놓기싫고 책임은 떠넘겨
대한민국은 ‘감사공화국’이다. 감사원뿐 아니다. 감사와 다를 바 없는 조사와 감시를 하는 곳은 더 많다. 모두 광의의 감사기관이다. 온갖 권한을 향유하는 권력기관이 너무 많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 뒤에서 감사권력기관의 부패와 비대함이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엔 탐욕이 난무한다. 그런 곳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선 감시, 검사, 감사할 곳이 필요하다. 그게 권력기관의 논리다. 감사와 감시를 당하는 국민과 피감기관들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참아왔다.
공적자금이 들어간 금융기관은 1년에 네댓 군데 기관으로부터 감사를 받는다. 큰 곳이면 더욱 그렇다. 우리금융이 좋은 예다. 금융위ㆍ금감원 검사, 예금보험공사 조사,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감사가 이들을 괴롭힌다. 가끔 국세청도 끼어든다. 경제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상전 중 상전이다.
이들 기관이 요구하는 자료 만들다가 1년을 보낸다는 ‘웃지 못할 얘기’는 상식이다. 공적자금을 받은 원죄가 있어 ‘더러워도 참는다’는 게 피감기관의 자조 섞인 탄식이다.
그래도 그 많은 감사권력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견디고 넘어갈 수 있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에 도취돼, 돈에 눈이 멀어 스스로 눈을 가려버린 게 문제다.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라고 권력을 줬더니 그에 합당한 책임은 방기한 채 되레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 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지금 일부 저축은행이 문을 닫아 돈이 묶인 예금자는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해 있다.
공무원 부패 방지의 ‘최후의 보루’인 감사원마저 무너진 지금 그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차관급인 은진수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에서 감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억원대 금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사퇴했다.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 사태로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금융감독기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한 인사는 “과거 내가 근무할 당시 부산저축은행 대주주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나 역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아예 몰랐던 건지, 아니면 어디선가 청탁과 압력을 받고 스스로 덮어버렸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은행에 금융기관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도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본회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국무총리실이 주관하는 금융감독기구 혁신 태스크포스(TF)에서 새어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관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금감원의 독점감독권이 문제라며 이를 쪼개겠다고 한다. 가령 저축은행에 대한 감독ㆍ검사권을 예금보험공사로 넘기고, 한은에는 은행을 감시ㆍ감독할 권한을 더 많이 부여해주면 된다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검사ㆍ감독에도 경쟁이 필요하다는 논리까지 나온다.
국가기관의 독점권력이 문제라면 이 참에 예전처럼 금감원도 두세 개로 쪼개고, 감사원과 국세청도 두 개씩 만들면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잘못된 권한행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려는 것 같다”며 “옥상옥에 또 옥상옥이 만들어질까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감사공화국 대한민국은 지금 정말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다.
신창훈 기자/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