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게이츠 통 큰 기부 정착
동양선 핏줄 중시 대물림 집착
2009년 국내 기부 9조6000억
10년새 3배…개인 기부도 증가세
기부금 공제비율 등 확대 절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최근 15억달러 규모의 버크셔해서웨이 주식 1930만주를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지금까지 무려 280억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 빌 게이츠도 최근 자신의 세 자녀에게 각각 1000만달러씩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해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이 두 사람은 철저히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꺼내 기부한다는 점에서 더욱 존경을 받고 있다. 앞서“ 부자인 채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자신의 철강회사를 처분하고 기부자가 된 카네기, 재단을 설립하며 기부문화를 확산시킨 록 펠러와 포드 등도 부를 독차지하지 않음으로써 존경받는 부자가 된 사업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부문화로 대표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서구식 덕목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버핏과 게이츠가 중국과 인도의 신흥 부자에게 기부 동참을 촉구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자기완성, 겸양,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이다.
워런 버핏은 자신의 재산 상당액을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는 빌 게이츠의 아내 멜린다, 좌우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그래서일까. 국내에서도 버핏, 게이츠 같은 통큰 기부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한 NGO 단체 관계자는 “국내는 부자의 기부가 많지 않다. 그것도 종교 관련 헌금을 빼면 턱없이 적다. 아무래도 핏줄 중시 문화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국내에서도 기부문화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국세청이 발표한 국세통계연보 등에 따르면 2009년 국내 기부 총액은 9조6100억원. 1999년 기부 총액이 2조9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0년 새 무려 3배 이상 증가했다. 개인기부는 64%, 법인 기부는 36%를 차지했으며 점차 개인 기부 비중이 느는 추세다.
정확한 통계를 잡기 어렵지만 부자의 기부도 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이 2009년 한 시중은행 자산관리서비스 대상 부유층(재산 50억~1000억원) 68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한 결과 응답자 66명 중 95.5%인 63명이 최근 3년 이내에 기부 참여 경험이 있으며, 절반가량은 봉사활동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대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성공한 기업인의 기부 사례도 늘고 있다. 재단법인 해피빈 권혁일 대표는 최근 기부를 통해 청소년이 회사를 차려 자립할 수 있는 ‘연금술사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삼성SDS 출신인권 대표는 검색엔진을 개발해 네이버(NHN)를 설립한 공동창업자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 서성환 회장의 유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 희망가게,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기증한 유한양행 주식과 제약업계 기부금 출연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보건장학회도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이 밖에 최신원 SKC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남한봉 유닉스코리아 대표, 허창수 GS그룹 회장,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 이상준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 등도 지속적으로 기부와 후원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미국 경제 격주간지인 ‘포브스(Forbes)’ 아시아판에서 기부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 부자로 존경받으려면 크게 두 가지, 기부와 봉사의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존경받기 위해 기부하거나 고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도 이 둘의 의미를 이해하고 묵묵히 드러내지 않고 우리 사회 그늘을 보담는 독지가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NGO 단체는 우리사회에서 개인기부문화가 제대로 자리잡고 확산되려면 ▷기부금 공제 비율을 미국처럼 30~50% 수준(한국은 20%)으로 높이고 ▷주식이나 부동산 등으로도 쉽게 기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다양한 기부방법 및 기금조성, 별도의 공익재단 설립 등을 조언해줄 수 있는 종합기부 컨설팅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대연 기자/sonamu@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