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국가이익 실종된 협상”
野 재협상·전면폐기입장 고수
4·11총선 이후 첨예대립 예고
FTA체감효과 대선 최대변수
정부 물가관리·유통개선 총력
동맹관계탓 재협상은 어려울듯
한ㆍ미FTA(자유무역협정)의 길고도 길었던 가시밭길 시계가 오는 15일 0시로 멈춘다. 지난 2007년 4월 한ㆍ미 양국이 FTA 협상을 타결한 이후 4년 10개월만이다.
하지만 한ㆍ미FTA의 시계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특히 4ㆍ11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만큼 올 연말 대선판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FTA 발효 이후 장바구니 물가 등 손에 잡히는 체감효과에 따라 FTA가 표심(票心)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한ㆍ미FTA는 당장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4ㆍ11 총선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 마라톤 협상 끝에 야권연대에 성공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총선정책으로 한ㆍ미FTA의 전면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표면상 ‘재재협상’과 ‘전면 폐기’ 등 각각의 정책노선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여전히 FTA를 ‘이명박 정권의 실정’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가 틈만 나면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한ㆍ미FTA는 국가이익이 실종된 것”이라며 “(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을 수정하지 않으면) 19대 국회와 정권교체를 통해 폐기시킬 것”이라고 맹공을 퍼붇고 있는 것을 봐도 총선 이후 FTA 관리는 여전히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수를 가져가더라도 한·미FTA에 당장 변화가 오지는 않을 전망이다. 총선 이후 정치권은 곧바로 올 연말 대선을 향한 채비에 들어가게 된다. 총선 이전과 마찬가지로 표면상으로 FTA의 꼬리를 물고 늘어질 게 불 보듯 뻔하지만 실질적으로 ‘폐기’나 ‘재재협상’ 카드를 쉽사리 꺼내들지 못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올 연말 대선에서도 한ㆍ미FTA가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FTA 발효 이후 가시적인 성과가 잡히는냐에 따라 표심이 갈릴 공산이 크다. 경제성장률이나 일자리 창출 같은 문제는 당장 손에 잡히는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FTA 발효에 따른 관세인하가 얼마나 장바구니 물가를 잡는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서민생활에 밀접한 가시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FTA 문제는 전혀 새로운 문제로 대선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내심 ‘정권 재창출’을 노리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끈질기게 민주당의 ‘말바꾸기’를 비난하면서 ‘물가’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삼겹살과 오렌지, 의류, 화장품 등의 관세인하로 물가안정과 소비자 후생 증대에 기여할 것”이라며 “관세인하 등 FTA 효과가 소비자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주요 수입품의 유통체계를 점검하고 제도 개선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게다가 FTA는 단순한 경제협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대목이다. 남북이 갈리고 중국과 일본 등 양강(兩强)이 에워싼 상태에서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관계는 필수요소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도 미국 의회와 정부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것도 한 몫한다.
특히 한국의 역사적ㆍ지정학적 특성상 미국은 자연스레 이데올로기와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전면 폐기 혹은 틀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재재협상까지는 이르지 못할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한미FTA에 유독 반대가 큰 것은 혹시 이데올로기의, 반미와 관련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데올로기 논쟁에 불을 지핀 것도 총선과 대선을 향한 회심의 카드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석희 기자/hanimom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