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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한의 리썰웨펀]군부대 ‘미투’ 적은 이유? “신고해도 안 된다는 생각 팽배”
-군 인원 총 60만여명에 달해…성범죄 미투 신고는 29건
-“조사 너무 오래 걸리고 솜방망이 처벌…신고해도 안 된다는 생각 많더라”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국방부가 지난 2월 12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약 3개월간 군 내부 ‘미투’ 고발을 접수받은 결과 총 29건에 달했다고 8일 밝혔다.

군은 위계질서가 엄하고, 외부와 격리된 채 폐쇄적으로 지내야 한다. 또한 군 내부는 남성 문화가 짙게 형성돼 있다. 우리 군 전체 규모는 약 60만여명이고, 여군은 이 중 1만8000여명에 불과하다. 심각한 남초 현상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군 내부에 성폭력이 횡행할 거라는 우려가 높다.

그러나 정작 ‘미투’ 신고 건은 예상 외로 낮았다. 그 이유가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국방부 청사

8일 군에 따르면, 미투 신고 29건은 준강간 2건, 강제추행 11건, 성희롱 15건, 인권침해 1건으로 이뤄졌다.

조사 기간인 지난 2월12일~4월30일 12건이 신고됐고, 지난해와 2월 신고접수 전까지 총 11건이 접수됐다. 그밖에 2016년 1건, 2015년 3건, 2014년 이전 2건 등이다.

29건 중 상급자에 의한 성폭력은 총 20건에 달했다.

가해자는 총 38명으로 영관급 장교 10명, 대위 4명, 중위나 소위 3명, 원사나 상사 7명, 중사나 하사 2명, 일반직 군무원 12명 등이다.

국방부는 “가해자 중 대령이 가장 계급이 높다”고 밝혔다. 영관급 장교가 가해자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피해자는 총 35명으로 영관급 장교 1명, 대위 1명, 중위나 소위 8명, 사관 후보생 1명, 중사나 하사 16명, 일반직 군무원 5명, 계약직군무원 3명 등이다. 피해자의 절반은 여군 부사관, 4분의 1은 위관급 여성장교다. 군 성폭력이 주로 여성 하급 간부를 상대로 일어나는 셈이다.

▶군 인원 총 60만여명에 달해…성범죄 미투 신고는 29건=국방부는 이명숙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장을 군 성범죄 특별대책 TF장으로 임명하며 강한 성폭력 근절 의지를 보였다.

TF가 가동된 2월12일은 서지현 검사가 과거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1월 29일로부터 약 2주가 지난 시점이다. 당시 검찰 내 성추행 조사단이 꾸려져 이날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김모 부장검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긴급체포하는 등 수사가 본격화됐다.

국방부가 약 3개월간 진행한 이번 TF 활동의 산물은 17건의 정책 개선과제 도출이다. 3년 주기의 군내 성폭력 실태 조사 정례화, 양성평등 의식 개선을 위한 가이드북 제작, 성고충전문상담관 운영 등이 골자다.

하지만 군은 이번 TF 활동을 통해 장기적으로 더 큰 소득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명숙 TF장 등 이번 군 성범죄 특별대책TF에서 활동한 인사들은 “생각보다 군 내부 성의식이 높다는 점에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군 내부 개개인들의 성의식이 높아 일선 부대원들의 성범죄에 대한 신고 태도가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TF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에는 사회적으로 활발해진 미투운동, 이제는 신고하면 처리가 될 것 같다는 믿음, 군부대 내 성폭력 예방교육 등이 일조했다고 본다”며 “실제 군부대 현장을 다니면서 성범죄를 당하면 신고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신고를 아예 안 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언어적 성희롱 건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어 놀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군 부대별로 성범죄에 대한 신고의식이 들쭉날쭉하는 실태도 드러났다. 특정 부대에서는 자신이 신고하면 신원이 다 드러날 수 밖에 없고, 그럴 경우 2차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해 전역을 안 할 거라면 신고를 못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TF 관계자들은 어떤 요소가 신고를 방해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사했다.

TF 관계자는 “일단 군에서 성범죄를 신고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있다. 군 내부 성범죄 신고 매뉴얼도 잘 만들어져 있고, 성범죄 관련 강사진도 잘 갖춰져 있다. 관련 법도 잘 만들어져 있다”며 “피해자들이 어떤 이유로 신고를 못하게 되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있어 부대를 다니면서 파악했다”고 말했다.

▶“조사 너무 오래 걸리고 솜방망이 처벌…신고해도 안 된다는 생각 많더라”=그 결과 신고를 해도 잘 처리될 지 알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TF 위원은 “현장을 많이 다녀보니 부대마다 성범죄에 대한 인지도가 다르더라”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군들 15명과 대화 중 성폭력 피해를 신고했다가 조사받았던 경험을 얘기하며 울던 여군이 있었다. 조사가 너무 오래 걸리고 처벌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누가 성폭력 당해 신고한다면 말리겠다고 하더라. 신고를 잘 안 하는 부대에는 신고해봐야 안 된다는 생각이 많더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부대에서는 신고를 해도 비밀 유지가 안 될 것이란 불신감도 높았다.

TF 관계자는 “부대에서 신고하면 비밀 유지가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로 인한 2차 피해가 너무 크다”며 “TF팀은 일부 피해자들이 신고를 안하는 이유를 이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신고하려면 완전한 비밀 보장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민간 성고충상담관의 활동이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또한 신고하면 신속히 조사되고 가해자는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이런 식으로 신뢰가 형성되면 신고를 많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성범죄 피해자가 나온 부대에서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할 경우 채찍 대신 당근을 줄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지금은 너무 신고에 대한 겁이 많은 상태다. 신고하면 가해자를 잘 처벌하고 해당 부대를 칭찬하는 식의 당근이 필요하다”며 “같은 부대원들이 피해자를 잘 보호하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모범 케이스가 나타나면 분위기 쇄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군부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좀 더 실질적인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휘관에 따라 성범죄 신고에 대한 의식이 다르게 나타나 해당 부대 지휘관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도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TF 관계자는 “아직 군을 그만둘 각오를 하지 않으면 신고 못한다는 생각이 많다. 사실 일반인들도 직장 그만둘 각오를 안 하면 성범죄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성희롱 사건 대부분도 직장 그만두고 신고된 사건들이 많다”며 “군은 구조상 모범적으로 성범죄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는 곳인데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 좋아지고 있는 곳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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