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령관, 7월 국방부 방문때는 장관 모르게 활동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지난 3월 16일 계엄령 문건을 보고하러 송영무 장관을 찾았을 때 사전 약속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령관이 평소 장관을 어떻게 여겼는지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국방부를 통해 당일 장관의 일정을 확인한 결과, 그날 장관은 오전 8시 조찬간담회(합동참모본부), 10시 국방운영개혁추진관 보고(국방부), 11시 국방과학연구소 정기이사회 및 오찬(국방부 및 국방컨벤션), 15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1차 회의(청와대), 17시 국군의 날 기본계획 보고(장소 미확인)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런데 이날 예정에도 없던 일정이 갑자기 잡혔다.
10시 국방운영개혁추진관 보고와 11시 국방과학연구소 정기이사회 사이에 기무사령관 보고가 갑자기 끼워넣어진 것이다.
송영무 장관과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24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군 관계자는 “근본부터 잘못됐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장관을 만나느냐”며 “그날 일정만 봐도 이 사령관은 약속 없이 일단 국방부로 와서 장관의 공식일정 중간에 살짝 끼어든 형국이다. 더군다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위중하게 생각했다면 더더욱 사전 일정을 잡고 와야 했다”고 말했다.
이날 당일 급조된 기무사령관 현안 보고는 10시 50분부터 55분까지 이뤄진 것으로 장관 비서진들은 기록했다.
▶기무사령관, 3월 사전 약속도 없이 장관 방문=이와 관련해 이석구 사령관은 지난 24일 생중계된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3월 16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기무사 계엄령 문건에 대해) 위중한 상황으로 보고했다”며 5분보다 더 오랜 시간인 20분간 보고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장관 측 정해일 군사보좌관은 이날 국방위에서 “송 장관이 9일 오전 10시 국방운영개혁 관련 합동부대 토의에 참석했고, 이 사령관은 10시38분에 국방부 본관 2층에 도착했다. 10시59분부터 5분간 보고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출입기록도 다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사령관은 이를 부인하며 “이 사안의 위중함을 인식할 정도로 그렇게 대면보고를 했다”며 보고시간 20분을 강조했다.
한편, 이 사령관은 ‘계엄 문건의 뭐가 심각하다고 봤느냐’는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대구 동구갑)의 질의에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계엄시행 계획을 작성하는 부서가 아닌 기무사에서 그런 계획을 준비했고 세부자료까지 만들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경북 경주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을 역임한 정종섭 의원은 지난 2015년 8월25일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 당시 장관 신분으로 참석해 만찬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쳐 주목받은 바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하는 고위공무원이자 선거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 장관이기도 한 상태에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당시 야당은 박 대통령에게 정 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그는 이로부터 약 8개월여 후인 2016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이어 이 사령관은 “참모들과 토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도 다각도로 얘기했으나 사안의 위중함을 고려해 송영무 장관에게 먼저 보고했다”면서 “(윗선이) 합참에 지시했다면 촛불집회 때 더 진척이 안 됐을 텐데 이런 사항을 직무와 관련이 없는 기무사에 줬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했다.
이 사령관은 ‘누가 지시를 했느냐’는 정 의원의 질문에 “제가 들은 것과 본 것이 차이가 있는데 기무사령관 이상의 지시에 의해 작성됐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송 장관은 그러나, 3월 16일 있었던 계엄 문건 보고와 관련해 “5분 정도 보고를 받았다. 그 문건이 아니고 지휘 일반 보고를 받았고 이것(문건)은 두꺼워서 다 볼 수 없으니 놓고 가라고 했다”며 “그날 일정이 바빠서 다 끝난 다음에 퇴근하기 전에 봤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는 꼭 해야 하는데 (그때는) 오픈시킬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그때 지방선거도 있고 남북대화도 있고 밝힐 수가 없어서 지나가면 확실한 수사를 시킬 예정이었다”고 했다.
한편, 이석구 사령관 측은 당시 사전 약속 없이 장관을 만난 것에 대해 "긴급한 사안일 경우 통상적으로 (기무사령관은 장관을) 사전 약속 없이 만나왔다"고 해명했다.
▶기무사령관, 7월 국방부 방문때는 장관 모르게 활동=이석구 기무사령관과 송 장관의 이런 ‘불편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더 있다.
이달 4일 송영무 장관은 날로 심해지고 있는 군부대 여군 성폭행 문제 등과 관련해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오후 2시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를 열고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를 모두 불러들였다.
이때 회의 참석차 국방부로 온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당일 오전 국방부에 도착한 뒤 국방부 대변인실과 국방부 기자실을 들렀다. 이후 기무사 인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2시 송 장관의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에 참석했다.
장관 비서진 등에 확인한 결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기무사령관이 이날 오후 회의에 참석하기 전 국방부 대변인실과 기자실을 먼저 들른다는 일정을 보고받지 않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기무사령관이 이날 국방부를 방문해 먼저 대변인실과 기자실을 찾은 뒤 오후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에 참석했다”며 “이때 장관 보좌진들은 기무사령관이 장관께 한 마디 없이 이날 오전 기자실을 찾았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해한 것으로 안다. 이런 장면은 기무사령관이 과연 장관을 상관으로 보고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들게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무사령관은 언론에 앞으로 본연의 업무인 방첩전문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등 다양한 기무사 개혁 방안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런 언급은 장관 측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이었던 셈이다.
송 장관은 이와 별도로 지난 5월 국방부 내에 기무사 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고강도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송 장관은 이날 기무사령관의 기자실 방문 뒤 “기무사령관이 (기자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더냐”며 궁금증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기무사령관의 장관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기무사 측은 이날 일정에 대해 사령관이 장관을 이날 오전 방문해 일정을 보고했다고 해명했다. 장관 비서진들과는 다른 의견이어서 진실 공방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인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