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가 우리 정부의 부당한 간섭으로 손해를 봤다며 거액 배상을 요구하는 투자자-국가간 투자 분쟁(ISD) 사건이 늘고 있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는 4건이다. ISD 개시 전 비공개 단계에서 중재의향서가 접수된 건까지 포함하면 총 6건으로 늘어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론스타를 시작으로 공식적으로 심리 중이거나 결론이 난 ISD는 7건, 당사자 협의 등을 통해 비공개로 진행되는 건까지 하면 10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 UNCTAD가 발표한 ‘2019년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총 71건의 ISD 사건이 발생했으며, 한국은 콜롬비아(6건), 스페인(5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분쟁 대상국이 됐다. ▶관련기사 9면
ISD는 국가가 자유무역협정(FTA)같은 양국 간 투자협정 규정을 어기고 부당하게 개입해 상대국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을 때 중재기구를 통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정치 논리를 경제에 적용하거나 국가의 민간경제 개입이 많은 나라일수록 ISD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한 대형로펌의 국제중재 변호사는 “ISD를 가능하게 하는 투자관련 조항들은 실제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쉽게 제기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단순히 배상책임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시장으로서 한국의 신뢰도를 따 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도 국가의 시장 개입을 투자자가 문제삼은 유형으로 ▷투자유치국이 외국기업의 투자를 불법으로 규정해 배제한 경우 ▷정부의 입법활동이 투자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경우 ▷국내법률 개정으로 인해 중재요청 조건 자체를 까다롭게 했을 경우를 꼽았다.
이 변호사는 “투자유치국의 책임이 인정된 사례를 보면 공공정책 그 자체의 문제보다는,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차별적 조치나 비례의 원칙에 맞지 않게 자의적으로 집행된 경우였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자체만으로 ‘한국이 과연 장기적으로 믿고 투자할 만한 곳인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