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진학을 앞둔 아이를 둔 덕에 지난달부터 입시학원들의 광고 문자가 폭주한다. ‘2022학년도 입시에 대한 대학들의 움직임’ ‘2023학년도 이후 교육정책의 변화와 대입 대비전략’ 등 중3 학부모를 겨냥한 현란한 홍보 문구들이 휴대폰 문자창을 빼곡히 채운다. 성공적인 대입을 위해선 고교선택부터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하거늘, 아는 것도 없고 결단력도 없는 무지렁이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학원을 기웃거린다. 프로 강사들의 한 수 가르침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메모도 해보지만, 들을수록 미궁이다. 학교에서 열리는 설명회도 가본다. 그 가운데 강남 한 자사고 설명회에서 만난 교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학부모님들, 정부에서 앞으로 대입 정시 비중 높인다고 하죠? 저희요? 겉으로 좋아하는 티 낼 수 있나요, 속으로만 웃고 있죠. 자사고 폐지요? 아무 걱정 말고 지원하세요.”
정부가 아무리 자사고·외고 일괄 폐지를 부르짖어도, 일선 교육 현장의 온도는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갑작스럽게 ‘대입 정시 비중 확대’를 언급한 순간부터 이른바 강남 8학군 학교들과 특목·자사고, 각종 사교육 업체들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대치동 아파트 전셋값은 폭등했고 매물은 씨가 말랐다고 한다. 강남의 온도는 다시 뜨거워졌고 8학군은 부활의 서막을 올렸다. 유은혜 부총리가 “정권이 바뀌어도 다시 원래대로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교육현장의 민심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강남 집값, 특목·자사고, 사교육 시장…. 모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확실하게 휘어잡거나 없애겠다고 공언한 대상들이다. 그러나 임기 절반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대통령의 “정시 비중 상향”, 이 한마디에 지난 2년반 동안 각 부처가 공들인 정책들이 우스운 모양새가 됐다.
특히 정시 확대는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육부가 마련한 일련의 정책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쪽에선 ‘고교 서열화’라는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자사고·외고 일괄 폐지를 밀어붙이면서, 다른 한쪽에선 정시 비중을 늘려 다시 학군과 고교를 줄 세우고 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물론 ‘아빠엄마 찬스’ 가 끼어들 여지가 많은 학종 대신 비교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수능 비중을 높여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과 박탈감을 제거하겠다는 선의는 이해한다. 하지만 방법과 순서, 속도가 모두 엉켰다. 학종으로 그나마 정상을 되찾아 가는 공교육을 안정궤도에 올리고, 2022학년도 대입 ‘수능 30% 확대’ 이후 정시 비중을 단계적으로 조절하는 게 선행됐어야 했다. 결국 정시확대를 정점으로 수능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내신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등 문 대통령의 교육 부문 대선공약은 일제히 미뤄지거나 사실상 폐기됐다.
14일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그래도 가장 공정한 잣대로 평가된다는 무대다. 수험생들의 선전을 기원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분명 우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살고 있는데, 대한민국 교육은 여전히 뚜렷한 철학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비틀대고 있다. 손바닥 뒤집듯 뒤바뀌는 교육 실험에 우리의 미래인재들이 언제까지 고통받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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