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었다" 해명에 '뒷북대응' 또 비난
-9.19합의 이후 잊었던 '군사적 긴장' 재발
-군사관계 '대립'으로 전환시킨 상징적 사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에 위치한 창린도 방어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창린도 방어대를 시찰하는 모습.[연합] |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군 당국이 북한의 해안포 사격훈련을 사전에 몰랐을 거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26일 "사전에 탐지해 해당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며 적극 반박했다. 이와 함께 군 당국이 사전에 어떻게 북한군 사격 훈련을 탐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했다.
군 당국이 '군사기밀 공개'라는 초민감한 사안을 놓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공보 업무와 '군사기밀 보호'를 위한 보안 업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26일 "이런 것이 오늘날 군 당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라면서 "북한의 군사훈련과 관련해 언론에 공표하지 않으면 군이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공보 업무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북한의 군사훈련과 관련해 미리 언론에 알리면 군 내외에서 보안 의식이 소홀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며 푸념을 털어놨다.
실제로, 전날 북한 언론매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서해상 북측 섬인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실시했다고 발표하고, 국방부가 서너 시간만에 이와 관련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히자 우려 속 논란이 확산됐다.
군 당국이 북한군의 해안포 발사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북한 언론매체에서 관련 사실을 발표한 뒤 사실을 인지하고 긴급 대응에 나섰다는 추측 보도가 이어진 것이다. 군은 이런 논란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보안 유지가 필요한 사항까지 제한적으로 거론하며 진화에 나섰다.
군의 한 관계자는 26일 "(북한의 해안포 사격 징후를) 23일 포착했고 북한이 사격훈련을 한 것으로 평가했다"면서 "여러 수단으로 수 발을 발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군은 23일 오전 미상의 음원을 포착해 분석 중이었다"며 "25일 북한 매체의 (김정은) 공개 활동 보도를 통해 창린포 해안포 사격으로 평가했다"며 "이에 따라 9.19 군사합의 위반에 대해 즉각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강력히 촉구했다"고 말했다.
다만, 군 당국자들은 북한 해안포 사격훈련 징후의 사전 탐지 사실에 대해 설명하면서 수 차례 보안사항임을 강조했다. 관련 보도로 북한군 사격훈련에 대한 우리 군의 탐지 수단이 노출될 경우, 앞으로 북한군 사격훈련에 대한 탐지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북한군은 우리 언론보도를 분석해 우리 군이 북한군 훈련동향을 어떤 방식으로 탐지하는지 역추적해 해당 탐지수단 제거에 나설 수 있다.
아울러 군 당국이 '북한군 동향을 사전에 탐지하고 있었다'고 밝히는 것 자체가 또다른 논란을 예고한다. '군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은폐', 또는 '뒷북' 논란 프레임에 몰리는 것이다.
즉, 북한군 동향에 대해 군 당국이 재빨리 발표하지 않으면 '국민 알권리 외면', '군의 탐지능력 부족' 등으로 지탄을 받게 되고, 반대로 군이 '사전 탐지' 사실을 밝히면 '보안 의식이 소홀하다'는 군 내외의 비판에 더해 알면서도 숨겼다는 '은폐'나 '뒷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다.
군이 이런 2가지 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적극반박에 나선 것은 군이 계속 침묵할 경우 '군이 몰랐다'는 추측보도를 사실상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그럴 경우 군의 탐지능력 자체가 비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군의 대비태세 등 군 본연의 방위 능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확대돼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번질 수 있다. 하지만 보도에 연동한 이런 식의 대응이 계속되면 군사기밀이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은 커진다.
사실 군 당국은 수십년 간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지난해 9.19 군사합의 이후 이런 곤란한 지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첫 '군사합의 위반'으로 9.19 군사합의 이후 잠잠했던 군 당국의 '공보와 보안 사이' 외줄타기 역시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북 군사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다면 북한군의 해안포 사격은 9.19 군사합의 이후 유지돼왔던 남북 군 당국의 '밀월관계'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규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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