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망자가 20년간에 걸친 대테러전쟁 사망자는 물론 베트남전쟁 사망자 규모를 이미 넘어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전시 대통령(wartime president)’이라고 자칭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적대세력에 국가의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해 싸워야 하는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코로나19로 촉발된 인명 피해와 경제 및 사회적 피해가 제3차 세계대전과 같은 양상이 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린 것은 적절한 상황 인식으로 보인다. 초기 단계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적 통제와 헌신적 의료진의 노력 속에 효율적으로 대응했지만 앞으로 코로나19는 국가경제에 큰 피해를 연쇄적으로 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총리를 정점으로 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설치를 지시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 추진 등을 주문한 것도 앞을 내다보는 선제적 대응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몰고 올 위기의 파장을 개별 국가의 경제 정책만으로 수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미 국가 간 인적 및 물적 교류가 위축되면서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주요 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물자의 글로벌 공급망이 차단되고 있다.
나아가 주요 국의 리더십 위기 속에 초강대국 간 갈등과 대립이 더욱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미국 정치권은 코로나19 발원에 중국 책임이 크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연일 견제하고 있다. 중국도 미 정부의 대응책을 자국과 비교하면서 은연중 국제적 위상 강화를 도모하는 모습이다. 지난 4월 초 중국 지식인 100명이 양국 간 협력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미국 지식인 90여명도 같은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의 위기를 협력해 수습하자는 지식인들의 공통된 호소에도 양국 간에는 오히려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과 나치즘이 초래한 공동 위기에 직면해 영국과 미국 등 연합국은 국내적으로는 여야를 망라한 거국 내각을 구성했고, 대외적으로는 정상 간 긴밀한 연락과 협조를 통해 공동 대응했다. 이념을 달리하는 소련과도 테헤란과 얄타에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보이는 코로나19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도 국내적으로는 초당적인 대응 태세를 갖출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미·중 등 주요 강대국 간 협력을 견인하고 이를 통해 세계 경제의 안정을 도모하는 안보 및 외교 정책이 필요하다.
비상경제 중대본이 국내 경제위기 관리를 담당한다면 국가안보실 등 외교안보 부처는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해 강대국 간 협력을 견인하는 적극적 대외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유럽 각국과 피해 공유 및 백신 개발을 위한 협력 채널을 활발하게 가동해야 한다. 전통적 안보 의제만을 다뤄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코로나19와 같은 비전통 안보 위협 사안에 대해 국제적 대응을 논의하도록 촉구할 필요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국제기구와 공동으로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이 받을 수 있는 인간안보 차원의 피해를 지원하는 국제 협력도 주도할 수 있다. 코로나19 방역에서 모범을 보인 한국이 주도한다면 여타 국가도 보조를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
오는 5월 9일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은 주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는 연합국 대열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야기된 또 다른 세계대전 상황에서는 그간 국내 성과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주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