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銀 발권부담 상당
저금리로 예금은 매력 ↓
국고채 투자매력 더 커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1865년 경복궁 중건을 위해 흥선대원군이 동원한 첫 재정수단은 ‘원납전(願納錢)’이다. 이름은 ‘원해서 내는 돈’인데 실제로는 강압에 의해 냈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 ‘원납전(怨納錢)’이다. 그래도 자금이 부족하자 대원군은 당백전(當百錢)이란 고액화폐을 발행한다. 당시 양화(良貨)였던 상평통보(常平通寶)의 100배 가치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5~6배 였으니 악화(惡貨)였던 셈이다.
보통 대규모 건설사업은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한다. 재정이 튼튼하거나, 사업의 전후방 연관효과가 크다면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다. 경복궁 중건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거의 없는 사업이었다. 재정이나 세수 기반도 없이 발권력에만 의지했으니 ‘엉망’이던 조선의 경제가 ‘끝장’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코로나19 경제충격에 맞선 정부의 첫 대책은 민관합동이다. 재정도 투입됐지만, 금융회사들의 ‘자발적’ 참여가 더 컸다. 이후 잇따라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면서 재정 역할이 커진다. 정부라고 수십 조원의 현금을 쥐고 있을 리 없다.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경기부양을 위해 금융권에 푼 돈을 다시 회수하게 되면 곤란하다. 애써 내린 금리가 다시 반등해, 경제의 빚 부담을 키울 수도 있다. 결국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국채를 매입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전세계적으로 통화량이 급증세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적극 동원되고 있다. 경제성장으로 통화량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위적으로 통화량을 늘릴 때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늘어난 통화량을 경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다. 기축통화이거나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통화가 아니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히 우리경제는 대외개방도와 자본시장 자유도가 아주 높다.
엄청난 돈이 풀리고 있지만, 경제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세계은행(WB)은 9일 올해 경제가 5.2% 역성장 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유동성이 증시를 비롯해 자산시장으로만 흘러가는 모습이다. 이날 가장 많은 돈을 푼 미국에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S&P500도 연초 이후 수익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집값 상승은 나빠도 증시 상승은 마냥 괜찮을 것일까? 경제가 좋아서 증시가 활황이라면 긍정적이지만, 돈의 힘으로만 증시가 오른다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금융시장과 실물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고, 결국 자산가에 자산가치 상승의 수혜가 집중될 가능성이 커진다. 양극화는 사회는 물론 경제의 안정성까지 해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통화공급은 역대급인데 유통속도는 사상 최저다. 부동자금은 어느새 1100조원이다. 부작용을 감수해야 할 한은의 발권력 보다는 부동자금을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도 최근 개인의 국고채 투자확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에도 정부는 개인의 국고채 투자기반을 넓히기 위해 입찰단위를 10만원으로 낮추고, 물가연동국채를 개인에 우선배정해 10년 이상 보유하면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했었다. 당시 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3.7%,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3.1%가량이었다. 지금은 1.3%, 1.4% 수준이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yield)이 은행 이자보다 더 매력적이다. 상당한 규모의 부동자금 흡수를 기대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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