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매물 씨 말라, 수일 새 1억원 오르기도
단지 내 전세계약 시점 따라 보증금 3억~4억원 차이
보증금폭탄맞은 세입자, 월세로 바꾸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헤럴드경제=성연진 기자] 서울 대표 학군지로 꼽히는 지역의 전세 매물이 최근 석달 간 9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구 대치동의 경우, 1000여개가 넘던 전세 매물이 100건 아래로 떨어졌다. 매물이 부족하다보니, 전세보증금 상승세가 집값보다 더 가파르다. 정부가 세입자 보호를 목적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지만, 사실상 전세시장에 진입하는 새로운 세입자에게는 ‘전세대란’을 안겨준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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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표 학군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정부가 7월 말 임대차보호법 시행을 단행한 이후, 이 지역 전세 매물이 94%가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헤럴드경제DB] |
16일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7·10 대책 이후 서울 대치동의 전세 매물은 1261건에서 현재 74건으로 94.2%가 줄었다. 이어 은평구 응암동(-92.8%), 송파구 잠실동(-90.5%), 양천구 목동(-90.4%), 중랑구 면목동(-89.4%) 등의 감소세가 눈에 띄었다.
이 가운데 6월 전후 백련산SK뷰·백련산해모로가 입주한 응암동과, 사가정센트럴아이파크 등이 입주한 면목동은 입주시 쏟아졌던 전세매물 해소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있는 종전 세입자와 새로 진입하는 전세수요의 희비가 엇갈린 곳은 대치동과 잠실동, 목동 등이다.
특히 재건축 추진은 더디지만, 그 덕에 세입자에겐 비교적 저렴한 전셋값으로 대치동 학군지를 누릴 수 있었던 은마아파트는 단지 내 전셋값 차이가 4억원에 이르게 됐다. 현재 84㎡(이하 전용면적)의 전세보증금 호가는 9억~9억5000만원에 달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기존 세입자의 재계약 보증금 가격대는 5억원대다. 지난달 계약서를 쓴 임차인은 8억원 보증금에 계약해 현 호가보다도 1억원이 낮다.
정부는 7·10 대책으로 다주택자의 세부담을 강화해 부담을 높였다. 시장에선 세입자에게 늘어난 세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는 정책 부작용이 지적됐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20여일 후 임대차법을 시행했는데, 새로 진입하는 전세수요가 정책 역풍을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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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과 목동도 대치동과 사정이 비슷하다. 목동은 서부권 대표 학군지로, 잠실은 다리만 건너면 대치동 학원가를 이용할 수 있어 전세수요자에게 인기가 높다. 이 일대는 전세수급의 문제가 극대화돼 나타나고 있다.
잠실동은 현재 월세 매물이 240건으로 전세매물(160건)보다 80건이 많다. 전셋값도 상승세다. 잠실엘스는 지난달 25일 59㎡의 전세가가 9억4000만원에 거래되며 전세 최고가를 기록했다. 2년 전 전세가는 7억~7억5000만원대로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곳과는 2억원의 보증금 차이가 난다. 임대차법 시행 이전에는 8억원대였다.
이 일대 전세를 알아보던 이들은 갑자기 늘어난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하는 수 밖에 없다. 저금리에 임대차법 개정으로 집주인이 먼저 월세 매물을 많이 내놓기도 하지만, 목돈이 부족한 세입자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강남권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부가 특수목적고와 자사고를 폐지하면서 학군지 전세수요가 점점 더 늘고 있다”면서 “갑자기 늘어난 보증금 감당이 안되는 이들은 이를 월세로 전환해 내겠다고 먼저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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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전세 품귀 현상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학군지로 꼽히는 목동에선 전세 매물이 아예 없는 단지가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목동 학원가. [연합] |
목동 일대도 전세를 원하는 세입자에겐 비상 상황이다. 목운초와 서정초 학군으로 학원가와도 가까운 목동 7단지는 2550세대 가운데 전세뿐 아니라 월세 매물도 ‘0건’이다.
양정중·고 등 남학생 학군지로 유명한 목동 5단지도 1848세대 가운데 전세 매물은 단 3건이다. 65㎡은 지난 6일 전세보증금 6억원으로 역대 최고가에 거래됐다. 현재 나온 매물은 7억5000만원을 부르고 있다. 며칠 새 1억5000만원이 더 올랐다. 앞서 7월 초 전셋값은 4억5000만~5억5000만원 수준이었다. 현 호가대로 거래된다면 석 달 새 3억원 상승한 셈이다.
문제는 올 하반기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차례 쓴 이들이 다시 전세를 구해야 하는 2년 후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2년 후 다시 임대차 계약을 해야 할 세입자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오고, 전월세상한제 없이 새 계약에 나설 수 있게 된 집주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불보듯 뻔하다”면서 “전세난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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