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아파트 전경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무주택 실수요자.’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의 첫 번째 키워드다. 주택시장을 투기세력이 아닌 무주택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수시로 강조한다. 성과도 있었다고 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 청약 당첨자 중 무주택자의 비중이 약 99%까지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했다.
‘현금부자.’ 문 정부에서 청약에 당첨된 무주택 실수요자를 한쪽에선 이렇게 부른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을 넘는 서울에서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정상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려면 현금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절반은 대출을 받을 수 없는 9억원 이상이다.
‘로또 당첨자.’ 문 정부 분양시장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로또’다. 정부의 분양가 규제로 시세보다 수억원씩 싸게 분양가가 책정돼 당첨만 되면 로또에 당첨된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해서다. 김현미 장관이 이야기한 무주택 청약 당첨자는 사실상 로또 당첨자인 셈이다. 현금부자면서 로또당첨자가 늘어난 걸 진짜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분양가는 앞으로 더 싸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로또 판이 더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너도나도 청약시장에 몰린다. 무주택자라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기존 주택시장은 정부 규제로 크게 위축됐는데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가파른 증가세다. 지난 9월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인 2681만명이 청약통장에 가입했다.
‘청약 대기자.’ 문 정부가 성과로 자랑하는 소수의 현금부자 당첨자를 제외한 무주택자 절대 다수는 청약대기자로 남는다. ‘로또에 당첨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다.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청약 가점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내 집 마련을 미루고 목표로 삼은 분양 대상 지역 주변에 무주택자로 남는다. 특히 서울에 분양 주택을 감당하기 어려운 무주택자들은 ‘3기 신도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정부가 입지 좋은 곳에 빠르게 공급하겠다고 한 그 물량이다.
‘임대차3법 수혜자?’ 정부는 이들이 안정적으로 전세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계약 갱신을 통해 2년 재계약이 가능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기로 했다. 이른바 ‘임대차3법’을 도입한 것이다. 계약 갱신을 할 때 전셋값 상승 제한선(5%)도 정했다. 정부는 이 조치를 통해 기존 전세입자가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게 된 건 또 다른 성과라고 자평한다. 어쨌든 기존 전세입자는 계약갱신 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을 통해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사지 않고 전세에 거주하면서 청약 대기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전세 시장은 요동 치기 시작했다. 청약 대기 수요는 수도권 전셋값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됐다. 3기신도시 공급 예정지 주변인 하남, 고양, 인천 등지의 전셋값은 어느 때보다 많이 올랐다. 서울에서도 강동구, 은평구 등 새 아파트 분양이 예정된 곳 주변은 어김없이 전세가 폭등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무주택 실수요자들은 행복할까? ‘전세 거주 기간 동안 원하는 분양아파트에 당첨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 ‘이미 한 번 계약갱신 청구를 했기 때 2년 후 새로운 전세를 구해야 하는데, 그때가 걱정이다’. 요즘 무주택 실수요자들 심정이다.
무주택 실수요자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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