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우세 장담 못해
현재 자율차 선두 구글
EV…기존 車업체 우세
전국칠웅 시대 초(楚) 회왕은 진(秦)을 견제하기 위해 합종책으로 뭉친 6국 연합의 우두머리였다. 이에 진(秦) 혜왕은 거짓으로 일부 영토를 할양하는 척하며 초의 합종탈퇴를 제안한다. 길게 보면 초에 불리한 제안이었지만, 회왕은 이를 받아들인다. 합종에 균열이 생기면서 결국 진에게 전국을 통일할 길이 열린다. 회왕은 재위 내내, 특히 외교부문에서의 어리석은 선택만 내렸고, 끝내 진에 속아 포로로 붙잡혀 생을 마감한다. 시호도 어리석은 임금에 붙는 ‘회(懷)’다. 그의 어리석음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진 군주의 묘호가 ‘혜(惠)’인 점과 대조된다. 전한 이전까지는 ‘혜’는 ‘헌(獻)’과 함께 가장 좋은 뜻의 시호였다.
외교는 국가간 총력전이다. 실패하면 단숨에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제휴 또는 인수합병의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초래한다. 최고경영자(CEO)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미래차 개발 협상이 결렬됐다. 애플카 기대로 현대차그룹 주가가 올랐던 만큼 조정은 불가피하다. 그래도 불리한 조건으로 제휴를 맺기 보다는 아예 손을 잡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미래차 시장은 경쟁은 스마트폰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애플이 성공하리라 장담할 수 없다.
▶‘애플카’가 벌써 미래차 1위(?)=애플이 만드는 자동차, ‘애플카’는 꽤 오래 전부터 가능성이 거론됐다. 지난해 테슬라가 글로벌 자동차업체 시가총액 1위가 되면서 애플카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 자율주행전기차 시장에는 테슬라와 애플 외에도 엄청난 거인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율주행기술 평가 순위를 보면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OS) 라이벌인 구글(알파벳)을 선두로, 완성차 업체는 물론 IT기업들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매년 순위가 요동을 칠 정도로 치열하다. 스마트폰 시장의 아이폰처럼 ‘애플카’가 독보적 위치에 오를 지는 미지수다.
▶애플이 더 절실할 수=구글도 애플은 제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스마트폰 부품은 많아야 1000개 미만이지만, 자율주행전기차는 최소 1만5000개 이상이다. 보안성과 안전성의 절대적 확보와 함께 복잡한 생산과정을 거쳐야하는 만큼 공급망관리(SCM)와 품질관리능력이 필수다. 수리와 판매 후 서비스 부문도 스마트폰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율주행차는 동력 통제가 전자적(by wire)으로 이뤄지는 전기차(EV)에 절대유리하다. 현대・기아차는 세계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는 전기차 플랫폼을 가진 몇 안되는 기업이다.
▶애플 의존, 종속 우려=대만의 폭스콘과 TSMC는 각각 아이폰조립과 핵심 반도체 생산을 맡고 있다. 폭스콘은 아이폰 조립을 독점하지만, 그만큼 애플 의존도가 높다. 아이폰 첫 생산 때 18배였던 주가수익비율(PER)은 스마트폰 경쟁이 치열해지며 10배까지 추락했다. 반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애플 외에도 다양한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절대 강자였던 인텔이 파운드리 경쟁에서 탈락하며 TSMC는 가장 큰 반사이익을 누렸고, 지난해 삼성전자까지 추월해 세계 1위 반도체기업에 올랐다.
▶현대・기아차 “독사과는 안먹는다”=수준에 오른 완성차업체들은 이미 전기차에 이어 자율주행차도 개발 중이다. 현대차그룹도 그 가운데 하나다. 현대차가 아닌 기아차가 애플카 생산후보로 급부상했던 이유다. 정의선 회장이 애플에 유리한 조건으로 종속 위험에 노출되기보다는 차라리 독자개발을 하면서 다른 IT파트너를 찾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폴크스바겐, 현대차에 거부당한 애플이 일본 토요타와는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가성비 가장 높은 완성차 업체 3곳 모두를 잃으면 오히려 애플이 다급해질 수 있다.
▶불확실성 해소…다음 재료는?=애플카 생산가능성은 현대차그룹주에 새로운 재료였지만, 협상결렬은 재료소멸과 함께 종속위험도 동시에 사라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주가가 하락할 수 있지만, 그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의미있는 반등은 의외의 곳에서 나올 수 있다. 이르면 이달 중 나올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시장 진출이다. 중고차 유통은 상당한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사업이다. 특히 국내시장 압도적 1위인 현대차그룹의 진출이 허용된다면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