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으로 먹는 한국 빵, 다양한 품목과 화려한 비주얼로 주목
국내에선 한끼 대신하는 담백한 ‘식사빵’ 유행
편의점도 뛰어들며 프리미엄급 식사빵 내놓아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거꾸로다. 담백한 빵을 주식으로 먹는 미국과 유럽인들은 달콤한 한국식 빵을 ‘간식’으로 사먹기 시작했다. 반대로 국내에서는 담백한 유럽빵을 한 끼 ‘식사’로 먹는 가정이 늘었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대표 베이커리업체의 성과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달라진 국내 식문화 트렌드에 따른 결과다.
한국인은 우리나라 빵 제조기술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밥’을 먹어온 한국인이 ‘빵’을 먹는 서구권을 이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제빵기술은 우리의 생각보다 우수하다. 국내 최대 규모 제과제빵아카데미인 ‘리치몬드 제과기술학원’과 ‘리치몬드 제과점’ 대표인 권형준 셰프는 “빵에 대한 우리나라 소비자 수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려는 제조기술이 이전보다 크게 높아졌다”며 “인절미 빵 등 한국 특징을 잘 살린 빵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한국식 빵의 특징은 빵 안에 여러 식재료를 넣으면서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는 것이다. 주식보다 간식으로 많이 먹기 때문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들이 많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영상에서 한국 빵을 접한 한 미국 여성은 “미국 베이커리에 비해 한국 빵은 종류가 다양하고 루돌프·꽃 모양 등 앙증맞은 케이크들이 많다”는 반응을, 한국 고구마케이크를 먹어본 미국 남성은 “이런 맛은 처음이다. 미국 케이크처럼 무겁지 않아서 디저트로 먹기 좋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한 현지 유튜버가 한국의 ‘고구마케이크’를 먹고 있다. [유튜브 캡처] |
현지인의 반응에 힘입어 국내 대표 베이커리업체들은 해외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오봉팽’ ‘파네라 브레드’ ‘프레타망제’ 등 유명한 현지 브랜드와 경쟁하면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지난 2013년부터 미국 뉴욕 맨해튼 주류시장 상권인 타임스스퀘어, 미드타운 등에 진출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미 전역의 매장을 2000여개로 늘릴 계획이다. SPC그룹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최근에는 배달 비중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비교적 배달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미국·프랑스에서도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4~5% 증가했다”고 말했다. 현지 업체와의 차별화 마케팅으로는 “30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선택의 재미’를 제공한다”는 점을 꼽았다. 현재 미국·프랑스·싱가포르 등 6개국에서 429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파리바게뜨’ 미국 뉴욕 맨해튼 렉싱턴점. [SPC그룹 제공] |
CJ푸드빌은 지난 2018년 해외 법인 중 최초로 흑자 전환에 성공한 곳이 뚜레쥬르 미국 법인이다. 지난 2016년부터 3년간 연평균 1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단팥빵·김치크로켓 등 한국식 빵들이 진열된 매장에는 현지인들이 북적거린다. 300여개에 달하는 품목 수는 타국의 경쟁 베이커리 브랜드 품목 수의 2~3 배 되는 수치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서양식 빵과는 달리 부드럽고 달콤한 맛, 김치·마늘·쌀 등 한국적 재료를 넣은 점 등이 호기심을 자극해 수요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생크림케이크와 조각 케이크는 미국의 대형 케이크나 버터케이크 위주 시장에서 화려한 비주얼, 촉촉하게 녹는 맛을 통한 차별화로 현지인을 공략하고 있다”고 했다. 뚜레쥬르는 미국을 비롯한 6개국에 280여개 매장이 있으며, 코로나19 확산에도 3년 연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뚜레쥬르 미국 매장에 진열된 소보루 빵[CJ푸드빌 제공] |
달콤한 한국식 빵맛에 스며들고 있는 미국·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담백한 빵을 한 끼로 먹는 ‘빵식(食)’이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확산 후 삼시세끼 밥을 해먹는 부담감을 덜어버리고 밥 대신 선택한 빵이 ‘식사빵’ 이기 때문이다. 이는 식빵이나 곡물빵·치아바타·캄파뉴처럼 안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유럽빵’, 즉 서구권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던 빵을 말한다. 이미 SNS에서 생크림식빵·통우유식빵 등 ‘핫’한 식빵으로 젊은 층의 관심을 끌어왔던 뚜레쥬르는 지난해 식사빵 매출이 제품별로 25%에서 많게는 30%까지 증가했다.
편의점 GS25에서 한 소비자가 식빵을 고르고 있다. [GS리테일 제공] |
‘홈베이커리’의 유행도 영향을 미쳤다. 가정에서 직접 식빵 등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편의점 또한 식사빵 트렌드를 가속화하고 있다. 주로 달콤한 빵이 진열됐던 편의점이었지만 최근에는 앞다퉈 식사빵을 내놓는 추세다.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나갈 정도로 짧은 거리를 주무대로 삼은 일상) 문화’가 확산되면서 가까운 편의점에서도 식사빵을 구입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세븐일레븐의 지난해 식빵 매출은 전년 대비 146% 신장했다. 세븐일레븐 측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식빵은 간편하면서도 다양한 한 끼 식사로 활용할 수 있어 주거지 상권을 중심으로 수요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세븐일레븐과 CU, GS25 편의점은 베이커리 브랜드를 론칭하며 관련 시장에 뛰어들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코로나로 ‘삼시세끼=밥’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맞춰 한 끼를 먹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식사빵’ 트렌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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