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초기 군사경찰 한 명도 입건 안 해…'봐주기' 논란에 뒤늦게 압수수색
군 수사심의위, 군사경찰 결국 불기소…유족 "절박한 한계..국정 조사해야"
"억울하다"는 B상사 접촉한 공군 공보장교에 뒤늦게 강압수사 논란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J중사가 1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공군 여성 부사관 A씨가 올해 3월 상관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신고한 뒤 두 달여만인 5월 22일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3개월여가 지난 현재 '초동수사 부실' 등으로 지탄을 받았던 수사 대상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고 있다.
아울러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공보장교 강압 수사 논란이 제기되는 등 군 수사당국이 여론이 가라앉은 뒤 '꼬리자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여군이 군 내부에서 성추행을 당할 경우 얼마나 큰 어려움에 빠지는지,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가 세상에 드러났다.
사건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절망스러웠을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엄정한 수사를 지시할 정도로 사건의 파장은 컸다.
문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만 보지 말고, 최고 상급자까지 보고와 조치 과정을 포함한 지휘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하게 처리하라"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군 당국은 군검찰과 군사경찰, 국방부가 참여하는 합동수사단을 구성해 수사하기로 했다.
또 민간인이 참여하는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운영하기로 했다. 군검찰 수사심의위가 설치된 것인 이번이 처음이다.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군검찰은 6월 4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관련 비행단 등을 압수수색에 나섰고, 이날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사의를 표명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 대통령은 당일 사의를 즉각 수용했고, 6월 6일 현충일에는 피해 부사관 추모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피해 부사관 부모를 만나 "얼마나 애통하시느냐"며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고, 유족은 "철저하게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 엄정 수사 지시하며 "최고 상급자"까지 성역 없다 강조=군 수사 결과, 공군검찰이 A씨 사건을 넘겨받은 뒤 55일간 가해자 조사를 하지 않았고, A씨 변호를 위해 군이 지정한 공군 소속 국선변호인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피해자를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수사 주체인 군검찰(국방부 검찰단)은 공군검찰을 압수수색하지 않아 제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유족 측은 6월 3일 '2차 가해' 혐의로 A씨 상관을 고소한 데 이어 6월 7일 국선변호인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또한 유족 변호사 측은 "공군검찰도 압수색을 받고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유명무실한 군 국선변호사 제도의 헛점도 드러났다. A씨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된 군 법무관은 군 복무를 시작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것으로 드러났다. 막 변호사 자격을 갖춘 초임 법무관이 사건을 맡은 것이다.
이런 단기 법무관의 주된 업무는 군 계약절차 등 행정관련 업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성문제 관련 사건을 맡기란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한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의 여성 우선 배정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 결과 피해자 A씨는 신고 뒤에도 두 달여간 방치됐다.
결국 군검찰은 6월 9일 공군검찰(공군본부 검찰부, 공군본부 법무실 인권나래센터)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늑장대응', '보여주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실제로 압수수색은 오전 8시 30분께 시작해 점심께 마무리됐으며, 군검찰단 수사관들이 공군검찰 관계자들과 안부를 주고 받으며 '친정집'을 언급하는 등 압수수색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6월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해 유족과 국민을 향해 사과하면서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군 사법제도 신뢰를 높이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씨 2차 가해 혐의로 기소된 부사관 B상사와 C준위가 6월 12일 구속됐다.
이어 군검찰단은 6월 15일 공군검찰 관계자 등 10명을 상대로 '감싸기 의혹' 관련 수사를 벌였다.
군검찰은 6월 16일 공군법무 법무실을 압수수색했다. 9일에는 A씨 사건 부실수사와 부실변론 의혹을 수사했고, 이날에는 초동수사 부실 지휘 여부를 수사했다.
군검찰은 6월 21일 A씨 가해자인 J 중사를 군인등 강제추행치상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보복협박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사건 발생 111일, A씨 사망 30일 만이다.
군 검찰은 또한 6월 21일 사건 관계자와 접촉한 정황이 발견됐다며 공군본부 공보정훈실을 압수수색했다.
군 검찰은 6월 22일 A씨 사건 관련 초동수사를 맡았던 공군본부 소속 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 사실이 드러났다. 군 검찰이 6월 1일 사실상 원점부터 다시 수사한 지 3주만이다.
▶사건 초기 군사경찰 한 명도 입건 안 해…'봐주기' 논란 일자 뒤늦게 압수수색=하지만 군사경찰은 한 명도 입건하지 않아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6월 23일 국방부(조사본부) 측은 "수사가 부실한 것은 직무유기 혐의상 '고의성' 요건에 해당하는지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취재진에 설명했다. 하지만 군사경찰은 3월 A중사가 직접 확보해 제출한 블랙박스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사실이 이미 드러난 터였다.
군 검찰은 6월 25일 공군 군사경찰단을 압수수색했고, 단장 등 4명을 뒤늦게 허위보고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군 검찰은 이날 공군 양성평등센터장도 A씨 사건을 늑장 및 축소 보고한 의혹에 따라 피의자로 소환 조사했다.
군 검찰 수사심의위는 6월 26일 2차 가해 혐의 B 상사와 C 준위에 대해 구속기소 의견을 권고했다. 이 결과는 의견서 형태로 군 검찰에 전달되며, 군 검찰은 이 의견을 존중해 처분한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6월 28일 A씨 초동수사를 맡은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 대대장을 형사입건했다. 또한 공군15비행단 운영통제실장, 레이더정비반장도 피의자로 전환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군 수사당국이 늑장대응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은 A씨 성추행 피해 당일 최초 신고에 해당하는 녹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초동수사 당시 이를 확보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A씨 유족은 6월 28일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 수사에 한계를 느낀다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느 지금의 국방부 수사본부(조사본부)와 감사관실 차원의 조사는 부적절하고,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A씨 부친은 이날 문 대통령의 엄정 수사 지시를 언급하며 "저와 아내는 그런 대통령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면서 국방부의 수사를 지켜보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절박한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군 검찰은 2차 가해 혐의로 구속 상태인 B씨와 C씨를 6월 30일 특가법상 보복협박 및 면담강요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군 검찰은 7월 2일 A씨 직속상관인 제20전투비행단 정보통신대대장과 선임 부사관 등 2명을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군 수사심의위, 군사경찰 불기소 및 공군 법무실장 처분 고심…유족 "절박한 한계..국정 조사해야"=군 수사심의위는 7월 7일 A씨 신상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15비행단 대대장과 중대장, 운영통제실장, 레이더정비반장 등 4명에 대해 군 검찰에 보완 수사를 권고했다.
군 검찰은 7월 8일 공군 법무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하기로 했고, 다음날 처음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공군 법무실장은 세 차례 군 검찰단 소환 요청에 불응한 뒤 처음 출석한 것으로 전해졌다.(군 수사심의위는 8월 19일 열린 공군 법무실장 심의에서 기소 여부를 결론내지 못했다.
국방부 합동수사단(군 검찰, 군사경찰, 국방부)은 7월 9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군사경찰 조직 총괄인 국방부 조사본부장에 대해 '엄중 경고'에 그치고, 공군 법무조직 총수 격인 공군본부 법무실장에 대해 수사가 제한된다며 '검찰 사무에서 배제했다고 밝혀 봐주기 의혹이 일었다.
A씨 사건에 대한 군사경찰과 공군검찰 부실 수사와 허술한 대응에 대한 일벌백계 의지를 전혀 엿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엄정 수사를 지시하며 최고 상급자까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윗선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국방부는 7월 13일 A씨 사건에 여군 특임검사를 임명하기로 하고 7월 19일 임명했다. 여군 특임검사는 여성인 해군본부 검찰단장이 임명됐다. 창군 이래 특임검사 제도가 도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 검찰은 7월 15일 공군 법무실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 뒤 첫 소환 조사를 벌였다.
군 수사심의위는 7월 23일 공군 양성평등센터장과 국선변호사에 대해 기소를 권고했다.
한편 국방부 영내 미결수용시설에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에 기소된 B 상사가 7월 25일 사망한 사실이 다음날 알려줘 충격을 줬다. A씨 상관인 B 상사는 8월 6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국방부 영내에서 피고인이 사망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국방부 장관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B상사에 대한 강압수사 의혹도 제기됐다.
▶"억울하다"는 B상사 접촉한 공군 공보장교에 뒤늦게 강압수사 논란=서욱 국방부 장관은 2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관련 질문에 "강압수사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군 수사심의위는 8월 11일 A씨 사망 사건 관련해 부실수사 혐의로 입건된 공군 군사경찰 2명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했다.
A씨 유족은 군 검찰이 의도적으로 부실한 수사자료를 수사심의위에 제출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강력 반발했다.
수사의 신뢰와 공정성을 높이고자 도입한 군 수사심의위가 취지와 달리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을 내놓는다며 논란마저 일었다.
군 검찰은 다음날인 8월 12일 공군 공보장교로부터 '강압수사' 혐의로 고소 당했다.
공군 공보장교 변호인 측은 군 검찰 소속 S 소령이 "(피의자로부터) 의도와 맞는 답변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피의자 측이 결백을 호소하자 반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위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세로 질문하고 불필요한 손동작을 하며 강압적, 위압적 신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공군 공보장교 2명은 A씨 사건이 보도된 이후 2차 가해 혐의를 받은 B 상사와 C 준위 등과 '불필요한 접촉'을 한 의혹으로 군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공군 공보장교 2명은 국방부 영내 미결수용시설에서 구속 상태에 있던 B상사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B상사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검찰은 이를 문제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 수사심의위와 군 검찰이 사건의 중심축에 해당되는 인사들에 대해 불기소 등을 결정해 신뢰와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사건과 연관성이 낮은 공보장교 등을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로부터 1주일 후인 8월 19일 군 수사심의위는 A씨 사건 '부실 초동수사 책임자'로 지목된 공군 법무실장에 대한 심의를 열었으나, 끝내 기소 여부를 결론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