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사진=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석열씨가 환경 애호가들에게 ‘심쿵’ 약속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최근 “전국 대형마트의 종이박스 자율포장대를 복원하고 ‘친환경’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이다
윤 후보의 공약은 정말 친환경적일까?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잠시 자율포장대의 역사를 짚어보자.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난 뒤, 짐을 종이 박스에 옮겨 담아 왔다. 장바구니나 비닐봉지보다 많은 양을 담을 수 있었고, 팔과 손가락도 덜 아파 소비자들이 선호했다.
하지만 쓰레기가 생긴다는 문제가 있었다. 종이박스 포장 과정에 테이프와 노끈이 사용되기 때문. 당시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 등 3개사 기준으로, 연간 658t에 이르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쓰레기를 바닥에 펼쳐놓으면 상암구장 약 857개 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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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제주도에선 종이박스 포장이 초래하는 쓰레기 문제를 3년 전부터 직시하고 있었다. 제주도 현지 중형마트 6곳과 제주특별자치도가 업무협약을 맺고, 2016년부터 자율포장대에 비치하던 종이상자와 포장테이프, 끈을 모두 치웠던 것이다. 대신 필요한 경우 종량제 봉투나 종이상자를 구입할 수 있게 하고, 장바구니를 대여했다.
정부는 제주도의 성공 사례를 주목했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신시키기 위해 지난 2019년 농협하나로유통,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4대 대형마트 등과 함께 업무협약을 맺었다. 당시 환경부는 “3년이 지난 지금 제주도 대형마트 이용자의 대부분이 종이상자를 쓰지 않고 있으며, 장바구니 사용이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3년 뒤에는 제주도의 성공 사례가 전국적으로 자리 잡을 것을 기대하면서.
자율포장대가 퇴출당한 지 마침 3년이 지난 지금. 대선 후보인 윤 후보가 자율포장대를 다시 거론했다. 자율포장대를 없앴던 이유가 포장 테이프와 노끈 쓰레기 때문이었다면, 이들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방식을 택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신 윤 후보는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끈, 종이 테이프 등을 대체재로 비치하겠다”고 했다. 환경오염 방지라는 본래 취지도 살리고, 소비자 편의도 개선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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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 캠프 관계자는 “환경을 보호하지 말자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율포장대 퇴출은) 규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행정편의적 발상이었고,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편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며 “환경 보호와 소비자 편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자율포장대는 정말 친환경적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최소한 환경 운동가들은 윤 후보의 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우선 종이가 정말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있다. 지난 2018년 홈볼트 주립대학(HSU)에서 플라스틱 빨대에 주목해 진행한 연구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HSU는 빨대 한 개가 생산·운반·폐기되기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는데, 플라스틱 빨대 하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5g, 종이 빨대는 1.38g으로 그 차이는 단 0.07g에 불과했다.
물론 HSU의 결론은, 그래도 종이 빨대가 더 친환경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생산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량을 비교해보니 종이 빨대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량이 플라스틱 빨대의 절반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또 다른 연구 결과도 있다. 2020년에 발표된 한 석사 논문(‘Plasticless’, 미시간공과대학)은 에너지수요량과 지구 온난화 잠재력을 따져봤을 때, 플라스틱 빨대가 주는 영향이 종이 빨대보다 2분의1, 3분의1 수준으로 적다고 분석했다.
이쯤되면 헷갈린다. “그래서 뭐가 친환경적이라는 거야?” 하나만 알고 가자.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을 만큼, 최소한 지구 온난화 대응 측면에서 종이가 월등하지는 않다는 것.
다수 유통기업에 플라스틱 저감 노력을 요구해왔던 소비자 모임 ‘지구지킴이 쓰담쓰담’ 클라블라우(활동명) 대표는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 와서 플라스틱 대신 종이로 돌아가자고요? 안 될 말이죠. 비닐 봉지와 같은 플라스틱 제품이 탄생했던 과정을 돌아보면, 종이를 만들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훼손되던 나무를 지키기 위한 차원이기도 했거든요. 플라스틱의 진짜 문제는 대부분 한 번만 쓰고 버려진다는 겁니다. 자원순환만 잘 된다면 플라스틱만큼 친환경적인 것도 없어요.”
‘종이 vs 플라스틱’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윤 후보가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한 자율포장대 얘기로 돌아오자. 환경 운동가들이 윤 후보의 공약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한 가지를 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 테이프 대신 재활용이 잘 되는 비싼 종이 테이프를 사용한다 한들, 한 번만 쓰이고 버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것을 친환경적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 핵심이다.
환경 운동가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애초에 3년 전 환경부와 대형마트가 자율포장대를 퇴출시킨 것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것 외에 다회용품을 쓰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정책은 ‘다회용은 불편하니 다시 일회용 문화로 돌아오자’는 메시지와 다름없다고 환경 운동가들은 지적한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오라’는 철학을 앞세워 쓰레기 줄이기 문화에 앞장서고 있는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자율포장대를 퇴출시킨 목적은 자기 용기, 자기 바구니를 가져오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봐요.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종이 테이프 쓰면 되지’ 하는 건 애초에 규제를 시작한 취지를 모욕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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