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원호연 기자] “자동차 공장 중단 등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런 상태로 공급난이 지속되면 스마트폰, 가전까지 영향받지 않는 영역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됩니다.”
재계가 러시아발(發) 공급난에 떨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전방위 공급망 교란으로 확산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현대차까지 러시아 공장 가동을 중단한 가운데 , 공급난 사태가 급속도로 확대될 경우 스마트폰 등 완성품부터 배터리 및 철강재까지 줄줄이 사정권에 들어갈 것으로 우려된다.
▶현대차 러 공장 5일 간 ‘올스톱’=현대차는 오는 5일까지 5일 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생산을 일시 중단할 예정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러시아 여성의 날 연휴인 6~8일이 지난 9일부터 차량 생산을 재개할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장기화되고 있는 자동차 반도체 부품 수급 영향에 따른 생산 중단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서방의 제재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지만, 서방의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반도체를 포함해 자동차 부품 수급이 장기적으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방침으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FDPR은 미국 기술이나 소프트웨어·장비를 활용해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을 미국산으로 간주해 러시아에 수출할 때 미국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FDPR이 적용되는 반도체의 경우 대러 수출 비중이 지난해 기준 0.1% 미만으로 낮지만, 반도체 칩이 포함된 자동차 부품까지 적용될 경우 부품 수급에 난항이 예상된다. 러시아로의 수출 중 자동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달한다.
어렵게 부품을 확보해 수출하더라도 러시아 현지로 부품을 운송하는 데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러시아로 향하는 항공로와 육로가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폭스바겐 등 우크라이나산 부품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 완성차 브랜드는 러시아 공장들의 문을 닫았다.
▶반도체 공급난, 스마트폰 등 가전 전반에 영향=반도체, 스마트폰, PC, 소프트웨어, 통신장비 등 제재 품목이 다양화·구체화될 경우 해당 품목들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역시 미국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대부분 적용하고 있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제재에 따른 영향이 예상된다. 전체 반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하지만 주변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반도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스마트폰 등 가전·전자기기 생산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는 차량은 물론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등 대부분의 가전제품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의 경우 삼성전자는 러시아 시장점유율이 30%에 달해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또한 삼성전자는 러시아 칼루가 지역에, LG전자는 루자 지역에 가전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세탁기, 냉장고 등 러시아 가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원자재가 급등 우려, 반도체 희귀가스 등 공급 차질=배터리와 철강재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원자재 가격의 급등도 우려된다. 러시아는 생산량 기준으로 니켈 3위, 알루미늄 3위, 석탄 6위의 자원 부국이다. 골드만삭스는 “알루미늄, 팔라듐, 니켈 등 러시아가 주요 공급처인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니켈 가격은 이미 이번 사태와 맞물려 올해 들어서만 20% 이상 상승했다. 팔라듐은 센서와 메모리반도체를 만드는데 쓰이며 러시아가 최대 생산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네온, 크립톤, 크세논(제논) 공급도 차질 우려와 함께 가격 역시상승세다.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네온, 크립톤, 크세논 등은 지난해 러시아 수입 비중이 각각 5%, 17%, 31%이며 우크라이나를 포함하면 크립톤과 크세논은 절반에 달했다.
네온 가격은 현재 전년대비 200% 급등했으며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당시에도 10배 이상 뛴 바 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언제까지?=자동차 업계에서는 그동안 지속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올 연말께는 해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공급난이 내년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공급망 개선과 반도체 업계의 생산량 증가로 올 하반기 개선될 것으로 내다본 반면, 반도체 업계는 생산 증가에도 내년까지 공급이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인피니언, NXP, 텍사스인스트루먼츠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들은 지난해 생산량을 전년대비 30% 늘렸으나 여전히 완성차 업계의 부족난을 해소하는 데는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리드타임(납품 소요시간)은 25주로 꾸준히 상승 추세다. 이는 2020년 평균 17.6주, 2017~2019년 평균 13.7주보다 길다.
하나금융투자는 “2022년 하반기부터 점진적으로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했던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인피니언은 “공급 차질이 끝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으며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판단했으며 ST마이크로도 의미있는 공급 증가 시점이 2024~2025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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