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연구자들이 ‘서태평양 연합의 권장’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도쿄대 교수 출신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약한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등이 주도한 책에서 필자들은 향후 일본이 지향할 국제 전략으로 ‘서태평양연합’ 구상을 제시했다. 중국 팽창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을 중심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태평양 도서국가, 그리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가 참여하는 연합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쿼드(Quad)’를 결성한 미국과 인도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눈에 띄지만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해양국가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여타 국가를 규합해 주도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국제 전략의 일환이다.
이미 일본은 10여년 전 당시 아베 총리가 중국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과 미국, 호주, 인도를 포함한 태평양 안보다이아몬드 구상을 제기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동의를 얻어 쿼드 결성으로 이어진 바 있다. 요컨대 일본 정치가나 지식인은 시대 변화에 부응해 국가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국제질서 구상을 그려 보이고, 그에 따라 외교 및 안보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이익을 확보할 국제질서 구상을 그리고 외교 및 안보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능력을 보유했는가는 외교 강국의 필수적 요소의 하나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 정부 등장 이후 ‘일대일로’를 제시하면서 육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고, 해상으로는 동남아와 중동지역을 포괄하는 영역에서 경제와 안보 협력 네트 워크를 구축해 국가이익을 확대하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트럼프와 조 바이든 행정부에 걸쳐 인도·태평양 전략을 표명하면서 쿼드와 ‘오커스(AUKUS)’를 구축했고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과 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방 확대에 맞서 국가이익과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동유럽 핵심지역을 확보해야 한다는 유라시아주의 지정학 구상에 영향받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도발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바야흐로 21세기 국제질서는 강대국 간 지정학적 인식과 국제 전략이 상호 충돌하는 양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국가이익을 반영한 국제질서 구상을 모색하던 시기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균형자론이나 박근혜 정부의 중진국 연합으로서의 ‘믹타(MIKTA)’,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이 그것이다. 이 구상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있는 나라로서 국가이익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국제 전략을 구상하고 외교와 국방·경제정책을 통해 일관되게 추진하려는 태세가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공약을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을 제시했고, 쿼드 점진적 가입 및 한·미·일 협력 복원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한국의 국가이익과 목표를 구현하는 국제 전략으로서는 더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나토 대 러시아 간 대결구도에 더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9·19 군사합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공세적 군사 행태를 재개하고 있다.
글로벌 및 한반도 차원에서 지정학적 충돌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에겐 어떠한 국제 전략이 필요한가. 동맹 미국을 필두로 일본, 호주 등 해양 민주주의 국가와 보다 강한 연대를 재구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북한과 중국 등 대륙 국가들에 대해서는 억제 태세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신뢰 구축 노력을 병행하는 정책 방향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종합국력 세계 10위권의 중견국가로서 해양 민주주의 국가와 대륙 전체주의 국가 간 지정학적 충돌 가능성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국제 전략 강구가 필요하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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