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6월 21일 베이징. 의화단(義和團)과 손잡은 청나라 조정은 서구 열강에 전쟁을 선포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일본 등 8개 나라가 이에 맞서 5만명의 연합군을 결성한다. 식민지를 두고 곳곳에서 싸우던 나라들이지만 한 편이 됐다. 영국군에는 당시 제국의 일부였던 호주와 인도 병력도 참여했다. 역사상 첫 동서양 연합군이다. 전쟁 시작 두 달여 만인 8월14일 베이징은 연합군에 함락당한다. 1860년 2차 아편전쟁 이후 꼭 40년만에 두번째 수도 함락이다. 청나라는 ‘종이 호랑이’ 만도 못한 열강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한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3년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가 G5을 만든다. 1975년 이탈리아, 1976년 캐나다가 가입해 G7이 되고 1997년 러시아가 참가하면서 G8으로 확대된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탈퇴, 다시 G7으로 돌아간다. ‘선진 7개국’으로 부르지만 사실 이들 보다 잘 사는 나라들은 꽤 많다. 중국이 끼지 못한 것을 보면 ‘민주주의’ 선도국가들로도 볼 만 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제국주의 시대 군사력을 앞세워 식민지 개척에 열중했던 열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줄이면 지난 120년 세계 패권(hegemony)의 주도국이다. 해체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제외하면 지금의 G7은 1900년 당시 8개국 연합군 구성과 거의 일치한다.
세계사에서 중국은 대부분의 기간동안 강대국이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00여년간 중국은 글로벌 패권에서 멀어진다. 연해주를 러시아에 빼앗기고 홍콩과 대만을 영국과 일본에 내어줘야 했다. 영국에 빌려준 홍콩은 조기에 반환을 받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까지 하나로 아울러야 1840년 이후 ‘상실의 시대’를 벗어나 명실상부하게 패자(覇者) 면모를 갖추게 된다. 태평양 진출 길도 활짝 열린다. 마침 대만은 전세계 반도체 산업의 요충지다. 반도체는 경제와 군사 모든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이지만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반대로 홍콩과 달리 미국 등 서방 입장에서 대만은 중국에 결코 내줄 수 없는 곳이다.
최근 G7의 가장 주요한 안건은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다. 2019년 홍콩 민주화를 촉구한데 이어 올해에는 홍콩, 신장, 티베트의 인권문제와 함께 대만의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미국 마이크론 반도체에 대한 제재로 불만을 드러냈다. 얼핏 1900년과 비슷한 대립 구도이지만 힘의 쏠림은 분명 달라졌다. 2002년 세계 경제에서 G7의 비중은 64%였지만 2022년에는 44%다. 이 기간 중국 GDP 비중은 4%에서 18%로 커졌다. 특히 중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거리가 먼 인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인구로 따지면 전세계의 절반 이상이며 엄청난 자원을 가진 나라들이다.
이번 G7 회의에도 인도와 브라질, 인도네이사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정상들이 초청을 받지만 주최측과 같은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규탄하는 내용의 G7+초청국 공동선언도 성사되지 못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깜짝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아예 만나지도 않았다. 올해 G20 정상회담 주최국인 인도의 모디 총리는 국제연합(UN) 안정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가진 UN은 서방이 일방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장치다. 약화된 G7의 힘은 미국과 영국이 회원국 확장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G7 확대 시 가장 유력한 후보다. 이미 2008년 이후 매 정부마다 대통령이 G7 회의에 초청받으며 단골 손님이 됐다. 세계 10위 경제력과 프랑스·일본에 견줄만한 군사력을 갖췄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한국을 포함한 G8로의 확대 필요성을 밝혔다.
우리나라가 G8이 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주요한 국가들의 모임에 낀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G8에 가입으로 우리가 실질적으로 가지게 될 것과 치러야 할 비용이다. 미국이 G7을 대중국 견제 창구로 계속 활용한다면 우리의 G8 가입은 중국을 자극할 재료가 될 수도 있다. G7은 경제 보다는 안보에 좀 더 무게 중심이 실리는 모임이다.
미중 대결이 격화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G7 내부에서도 프랑스와 독일 등은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고 나섰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게 외교다. 자칫 한 편에 너무 치우쳐 있다가 상황이 돌변했을 때 선택지가 없다면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狡兎三窟)고 했다. 어떤 가능성에도 대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중국 최초의 국가경영서로 꼽히는 책이 관자(管子)다. 관중(管仲) 가르침을 순자(荀子) 때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관중은 다국적 시대인 춘추시대에 제(齊)나라를 패권 국가로 발돋움시켰다. 그의 외교는 명분을 내세우며 실리를 챙겼고 어느 한쪽의 이익 뿐 아니라 모두에 도움이 되는 상생의 선택을 지향했다. 그 중 한 대목을 살펴보자.
“선왕들은 구속당하거나 얽매이지 않았다. 약속은 깨지고 맹세는 끊어지는 법이다. 정말 가까운 사이에는 약속이나 동맹 따위가 필요 없다. 국제 질서는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바꾸어 갈 수는 있다”
(先王不約束不結紐 約束則解 結紐則絶 故親不在約束結紐 天下不可改也 而可以鞭箠使也)
이런 대목도 나온다.
“다툼이 될 일은 저지르지 말라. 가까이 있는 것을 구하겠다고 근심을 멀리하지 말라.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구하기 어렵다” (毋犯其凶 毋邇其求 而遠其憂 高爲其居 危顚莫之救)
춘추시대 초기 강대국인 진(晉)과 초(楚) 사이에 끼인 정(鄭)나라 외교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끈 이가 자산(子産)이다. 그의 외교는 한마디로 ‘진나라를 따르지만 초나라와는 잘 지낸다(從晉和楚)’로 요약된다. 안보가 곧 경제이고 경제가 곧 안보인 시대 대한민국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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