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 속 ‘맨허튼 프로젝트’의 책임자 오펜하이머 박사 모습(왼쪽)과 핵폭발로 인해 핵구름이 형성된 이미지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 캡처·123rf] |
세계 최초의 핵무기 탄생에 관한 영화 ‘오펜하이머’가 이달에 개봉했다. 1945년 세계 최초의 핵무기 사용, 일본의 항복 그리고 우리나라의 해방은 모두 8월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처럼 우리 역사와도 관련이 있는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묘사된 핵무기 개발 시대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핵무기 투하와 관련된 몇 가지 논쟁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논쟁은 핵무기 사용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전략폭격 표적들은 사실상 인구밀집지들이었다. 그래서 미국 해군성 부장관 랠프 바드 등은 핵무기를 인명 피해 없이 경고 목적으로 먼저 사용한 후 일본의 행동 변화가 없을 경우에 실제 표적을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사상 최초의 핵실험을 방금 마친 당시 상황에서는 핵무기 재고량 부족 문제가 따랐다. 일본에 경고한 후 일본이 보는 앞에서 핵무기의 기술적 실패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 결과, 핵무기 사용방법은 경고를 위한 무력시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사용하는 것이 됐다.
두 번째 논쟁은 핵무기 표적에 관한 것이었다. 핵무기 표적은 대도시 산업지대가 될 수도 있었고, 일본의 군사력 자체가 될 수도 있었다. 미국 육군 참모총장 조지 마셜 등은 비전투원들을 대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기보다 예정된 규슈 상륙작전의 군사 표적에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훗날 미국 전략공군사령관이 되는 제21폭격사령관 커티스 리메이 등의 주장에 따라 도시에 핵폭격을 가하는 쪽이 우세해졌다. 결국 핵무기 표적은 군수시설이 있는 도시로 정해졌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선정됐다.
인류 최초로 핵무기가 사용되는 시점에는 여러 논쟁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핵무기의 사용 여부 자체에 대한 논쟁은 거의 없었다. 사실 당시 미국에는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핵무기 사용 이외에도 일본 본토 상륙, 무조건 항복 조건을 일부 완화한 조기 종전 유도, 봉쇄와 재래식 폭격의 지속에 의한 압박 등의 옵션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독일과의 무기 개발 경쟁에서의 승리였고, 독일이 먼저 항복한 이후에는 무기가 준비되는 대로 일본에 사용한다는 것에 이론이 없었다고 한다. 즉, 핵무기의 사용방법과 표적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핵무기 사용 자체는 독립적인 의사 결정이기보다는 핵무기 개발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과정의 결과였던 셈이다.
그 이후 핵무기는 일반적인 군사무기와 구분되는 특별한 무기로 간주되기 시작했고, 1945년 이후로 지금까지 역사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무기가 됐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려는 브라운대학 타넨월드 교수, 맥길대학 폴 교수 등 핵무기 사용 자제 이론가들은 미국의 경우 한국전쟁부터 핵무기에 대한 시각이 변화했다고 보고 있다. 핵무기의 최초 사용과 핵무기에 대한 시각이 바뀐 시점의 상황이 모두 우리나라 역사와 밀접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한국전쟁 당시 핵무기 사용을 주장했던 맥아더 사령관과 트루먼 대통령의 알력이 널리 알려진 바처럼 미국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존재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중국의 참전 결정이나 휴전협상에서의 태도를 강제로 변화시키기 위해 핵무기를 위협의 카드로 사용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유럽 동맹국들의 핵무기 사용 반대에 직면한 가운데 핵무기를 끝내 사용하지 않았고, 미국의 핵 위협으로 중국의 참전 결정이나 휴전협상에서의 입장이 변화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 결과, 한국전쟁부터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는 전통이 시작됐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이론에 따르면 오늘날까지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는 전통도 강화된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핵무기 사용 자제 전통에 대한 시험대가 됐다. 이 전쟁에서 핵보유국인 러시아는 비핵국가이면서 확장 억제도 보장받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암시적인 핵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직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핵 위협도 항상 고조시킨 것만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완화시키는 모습이다. 2022년 3월 26일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핵무기 사용이 가능하다고도 했지만 8월 16일 쇼이구 국방장관은 군사적 관점에서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사용할 이유는 없다고 발언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년여에 걸쳐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 자제 전통의 변화 여부는 전 인류의 관심사다. 역사상 첫 핵무기 사용 후 78번째 맞는 8월에 오펜하이머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 자제 전통의 지속 여부를 지켜보는 관찰자 중에는 이론가들뿐 아니라 탈냉전 이후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국가들도 있고, 북한도 지켜본다는 것이다.
핵무기 사용 자제 전통의 변화 여부가 북한의 행동과 한미 동맹의 확장 억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우리도 우크라이나 상황을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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