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인요한 연세대 교수의 첫 마디는 “아내와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내려와야 되며 희생 없이는 변화가 없다”고도 했다. 한 마디로 여권의 체질을 바닥부터 싹 바꿔야 하며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말을 인용해 강도 높은 여권 쇄신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인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 인수위 국민대통합부위원장으로 참여한 적이 있지만 정치권과는 거리를 둬온 인사다. 게다가 미국 선교사 후손이면서 호남 태생으로, 특별귀화 1호의 이력이 있다. 그런 만큼 정치적 부채와 부담이 없는 홀가분한 입장이다. 평소 ‘국민의힘 호남 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국민통합주의자이기도 하다.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여권의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낼 적임자로 기대되는 이유다.
그러나 인 위원장이 자신의 생각처럼 여권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혁신위가 당의 환골탈태를 이끌어내고 내년 총선 승리의 기반을 마련하려면 사실상 ‘무한 전권’을 확실하게 손에 쥐어야 한다. 더욱이 지금 여권은 실망 수준을 넘어 지지자들조차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실질적인 권한도 없이 적당히 쇄신 시늉만 내는 혁신위에 그친다면 민심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말 것임을 여권 핵심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전권의 핵심은 결국 공천권 향방이다.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이렇다할 움직임 없이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내년 총선 공천을 의식해서다. 여당이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독주에 견제는커녕 눈치만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도부를 대폭 개편한 ‘김기현 2기’ 역시 보수 지지층에 기대는 영남당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병의 여권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메스를 가하려면 총선 공천개혁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 위원장이 “많은 사람이 희생하고 내려와 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기현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전권’을 부여했다고 하지만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권 부여에 공개적으로 동의해야 비로소 혁신위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의 저항이 거셀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성역은 있을 수 없다. 이를 슬기롭게 넘어서지 못하면 국민의힘은 총선 승리는 고사하고 정치적 미래마저 장담하기 어렵다. 인적 쇄신을 위한 공천 룰 손보기가 인요한 혁신위 개혁안에 포함돼야 하며 윤 대통령은 이를 반드시 수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