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금융감독원을 전격 방문해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 여권 핵심이 총출동한 불법 사금융 민생현장간담회에서 “약자의 피를 빠는 악질적 범죄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평생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처단하고 필요하면 법 개정과 양형 기준 상향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범죄수익에 대한 광범위하고 강력한 세무조사, 불법 추심에 스토킹처벌법 적용 등도 주문했다. 가뜩이나 고물가·고금리에 신음하는 취약계층을 이중, 삼중으로 약탈·착취하는 악의 무리에 철퇴를 내리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책무다.
현직 대통령의 금감원 방문은 12년 만의 일이다. 사금융 폐해가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뜻이다. 불법 사채업자의 빚독촉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세 모녀 사건이 있었고 30대 여성이 100만원을 빌렸다가 연 5200%대 살인적 금리를 요구받고 성착취를 당한 사건도 발생했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 독촉전화는 이제 양반이고 상환이 조금만 늦으면 살인적 이자를 추가로 물려 빚의 굴레를 씌운다. 먹잇감(차주)을 노예화·인질화하는 악랄한 추심과 함께다.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불법 사금융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저신용자(6~10등급) 5478명과 우수 대부업체 23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해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못 빌려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내몰린 저신용자는 3만9000~7만1000명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나온 추정 규모(3만7000~5만6000명)와 비교해 최대 26.7%가 늘어난 수치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6800억원에서 1조2300억원에 달한다. 올 상반기 금감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상담·신고(6784건)도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지난 2012년 금감원이 불법 사금융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하는 등 나름 대처에 나섰지만 범죄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IT 비대면기술의 발달로 갈수록 지능화하는 범죄를 따라 잡으려면 더 기민한 대처가 필요하다. 50만~100만원 소액 대출로 인생이 망가지는 일이 없도록 서민금융지원제도를 더 확충하는 것도 시급하다. 법정 최고 금리 규제가 저신용자를 불법 사금융으로 내모는 역설을 불렀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전 정부에서 ‘서민의 이자부담을 줄여주겠다’며 최고 금리를 연 27.9%에서 20%로 인하한 뒤 주요 대부업체는 사실상 영업을 중단했다.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이 공갈포가 되지 않도록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