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자본시장법 설명의무 위반만 손배
금소법은 법 어기면 포괄적으로 손배
연임 이슈 걸린 은행 CEO 거의 없어
금감원 자율배상 유도도 쉽지 않을수
손실 발생 때마다 불판→손배 악순환
은행 ELS 판매허용 재검토 논의 필요
2019년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책임을 지고 ‘자율배상’을 했다. 배상 규모도 손실의 일부에 그쳤다. 법 위반으로 행정제재는 가능했지만 손해배상까지 강제할 법적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2020년 라임펀드 사태 이후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내놓은 배상비율은 65~78%였다. 기본이 자본시장법의 적합성과 설명의무 위반인데 합쳐서 30%로 인정됐다.
내년 상반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지수 연계 주식연계증권(ELS) 8조4100억원 가운데 40%가량이 손실 구간에 접어 들었다고 한다. 금융당국에서는 불완전판매를 의심하는 모습이다. 법을 어겼다면 배상도 이뤄질까? 그런데 시점이 애매하다. 마침 자본시장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이 교차하는 묘한 시점에 문제의 상품들이 판매됐다.
금소법 제정은 2020년 3월 24일이지만 시행령 마련이 늦어지면서 공포 때부터 시행시점이 1년 뒤인 2021년 3월 24일로 정해졌다. 금소법 시행 전에는 자본시장법이 적용된다. 통상 ELS 만기가 3년인 점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 도래분의 가입시점은 2021년 1월~6월이다. 똑같은 상품이라도 2021년 3월24일까지 가입분은 자본시장법, 이후 계약분은 금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금소법은 법을 어겨서 금융상품을 판 금융사가 손해배상을 하도록 포괄적으로 정하고 있다. 법을 어긴 계약은 해지(위법계약해지권. 행사해도 원금을 모두 돌려받는 것은 아님)도 가능하다. 은행이 생계에 중요한 노후자금인 것을 알고도 원금 손실이 크게 날 수 있는 상품에 가입시켰다면 적합성 위반이다. 금소법에서는 배상책임을 강제할 수 있지만 자본시장법에는 근거가 없다.
자본시장법은 설명의무 위반에만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했다. DLF사태 때 은행에게 자율배상을 받지 못한 일부 투자자들이 아직 법정에서 다투고 있는 이유다. 물론 설명의무 위반이 확인되다면 자본시장법으로도 배상 받을 수 있다. 하지만 ELS는 공모형이고 워낙 오랜 기간 각광 받아온 상품이어서 설명의무 위반 입증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설명의무 위반이 인정되려면 △투자판단 또는 금융상품의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을 △거짓 또는 왜곡하거나 △중요한 사항을 빠뜨리는 경우다. 특히 이미 여러차례 ELS에 가입해 수익을 얻은 후 재가입 했다면 설명의무 위반을 주장하기 어렵다. 결국 자본시장법인지 금소법인지에 따라 배상 여부와 규모 차이는 클 수 있다.
일단 법을 어겨 금감당국에서 중징계를 받으면 금융회사 임원은 연임이 어렵고, 5년간 금융권 취업도 제한된다. 법이 어중간하면 주먹으로라도 배상을 압박할 수 있지 않을까? 금융위는 최근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 책임을 물어 증권사 CEO들의 중징계를 확정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직무정지 3개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문책경고다. 4년을 끌던 제제가 하필이면 지금 확정됐다.
현정부 들어 5대 은행과 지주 CEO가 거의 다 바뀌었다. 신한은행과 신한금융지주를 제외하면 KB금융과 국민은행,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 NH농협금융지주와 NH농협은행 모두 새 수장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ELS가 팔린 시기에 관련된 업무 라인에 없었다. 연임을 제한하는 제재 대상이 되기 어렵다.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문제를 제기한 만큼 ELS 사태가 그냥 조용히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변동성이 높은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ELS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는 사태는 이미 겪었다. 그래서 변동성이 낮은 주가지수 기초자산 상품으로 유도를 했는데 또 탈이 났다. 이 참에 증권사도 아닌 은행에서 일반개인에게 ELS 같은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한 게 맞는 지에 대한 검토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ELS는 꽤 높은 확률로 예금이자의 몇 배를 벌 수 있는 상품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오래전부터 상인기가 높은 상품이다. 하지만 기대수익이 은행 이자보다 높은 반면 기초자산 가격이 폭락하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낮은 확률인 기초자산 폭락이 발생하면 투자금의 절반 이상을 날릴 수 있는 구조다.
특히 가격변동 기준인 기초자산의 변동성은 물론 관련 옵션시장에 대한 이해까지 필요하다.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 선진국 금융회사들은 일반 개인고객에게는 아예 권유조차 하지 않는다. ELS를 판매하는 은행원이 상품의 구조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 지도 의문이다. 이자이익이 막대한 은행이다. 대부분 계열 증권사도 가지고 있다. ELS 안 판다고 경영이 어려워 질 것도 없다.
은행이 대규모로 공모한 ELS의 손실이 가져올 금융시장 충격도 경계해야 한다. ELS는 채권투자 시발생하는 이자로 옵션에 투자하는 구조다. 손실이 발생하면 채권을 팔아(만기채권은 투자원금) 옵션 거래 상대방에 (손실분 만큼) 값을 치러야 한다. 채권시장에 부담요인이 될 수도 있다. 옵션 거래상대방은 대부분 해외투자자다. 대규모 달러 수요가 발생하면 외환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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