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조정·화해 後 배상 여지 내비쳐
3자이익·배임은 重罪…처벌 중요해
고유자산 손실보상은 위법의 합법화
“붕당을 우애로, 잘못을 감추는 일을 인으로, 꼼수를 지혜로 여긴다”
(以朋黨爲友 以蔽惡爲仁 以數變爲智)
관자(管子)에서 소개한 옛 성군들이 금지했던 일이다. 나쁜 짓을 하는 무리들 사이의 의리는 협잡(挾雜)일 뿐이고 다른 이의 것을 빼앗기 위한 무력은 폭력일 수 밖에 없다. 남을 해롭게 해 이익을 얻으려는 꾀는 결코 지혜가 될 수 없다. 증권사들의 도덕적 해이의 수준이 이미 도를 넘는 듯하다. 고객 기망에 이어 이번에는 위법을 위법으로 덮으며 금융당국과 주주까지 농락하려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 채권형 랩, 신탁 검사결과 주요 검사내용과 거래예시 |
금감원은 지난 5월 이후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신탁 업무실태에 대한 집중 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는 제3자 이익도모 행위 정황이 드러났다. 특정 고객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고객에게 손실을 입히는 불건전영업행위다. 특히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다른 증권사까지 동원해 치밀한 구조를 짰다. 최고경영진까지 불법행위를 방조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4년 맥쿼리투자신탁운용(옛 ING자산운용)이 증권사와의 '채권파킹' 과정에서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수익률을 부당하게 조작한 사실이 적발됐다. 당시 맥쿼리운용은 KTB투자증권과 키움증권 등에 파킹한 채권가격이 급락해 국민연금과 ING생명, 삼성생명이 맡긴 일임자산에 손실이 발생하자 편법적인 거래로 이들의 손실을 보전해줬다.
재발방지를 막기 위해 조사만큼 중요한 게 사후 조치다. 금감원은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중대 위법행위로 판단, 주요 혐의사실을 수사당국에 제공하기로 했다. 객관적인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 등을 통해 환매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런데 금감원은 증권사들이 위법 행위를 인정하면 자율조정·사적화해를 통해 자체적으로 배상할 여지도 열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파악한 증권사별 손실 전가 금액은 최대 수 천 억원 규모이지만 9곳(하나·KB·한국투자·유진투자·SK·교보·키움·NH투자·미래에셋) 대부분이 대형사다. 크지만 감당 못할 액수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위법성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고유자산으로 고객 손실을 떠안게 해달라는 요청을 당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금감원이 이런 요구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 또한 ‘어이없는’ 일이다.
자본시장법 55조는 손실보전이나 이익보장을 금지한다. 예외는 크게 2가지다. 연금이나 퇴직금 지급 목적인 신탁인 경우에 제한해, 그나마도 금융위 고시에 따를 때다. 또 건전한 거래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다. 손해배상과 손실보전은 분명 다르다. 의도된 불법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보전해주는 게 ‘건전한 거래질서’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될 수도 없다.
위법행위에 대한 수습을 위해 회사 측이 위법한 수단을 금융당국에 요청했다면 이 역시 심각한 문제다. 자본시장법상 손해배상 책임은 일단 금융투자업자에 있지만 관련 임원에 귀책사유가 있다면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위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고유재산 매매 형태로 회사만 오롯이 떠안으려면 이사회나 주주들의 승낙이 먼저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업무상 배임 여부를 또 따져야 한다.
이번 사안의 무게는 해당 위법사항에 대한 처벌 수위에도 나타난다. 금감원이 수사의뢰한 형법상 업무상 배임의 처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자본시장법에서 제3자 이익을 도모하는 불건전영업행위는 금융위가 금융투자업 인가나 금융투자업등록을 취소할 수 있는 근거를 정한 자본시장법 420조 1항을 적용할 수 있는 중죄다. 손해 배상만으로 덮을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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